4 그대 생각이 나 연락했다는 말
어떤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음악을 듣다보면 가끔 <이 노래!>라는 생각이 푱, 하고 떠오른다. 마음의 강물 위로 뜬 공처럼. 이 느낌은 바쁘게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산책길에 나서는 다른 집 강아지의 표정을 봤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비슷하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노래를 듣다보면 <이 노래!>는 나의 친구를 위한 곡이다! 할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에게 쓰는 테마곡처럼. 어떤 음악을 들으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대뜸 나는 음악앨범커버를 캡처해 보내기도 한다. 그대 생각이 나서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커버사진을 보내는 것이다. 나에게서 아직 그런 사진이 오지 않았다면 그대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가 너무 많거나, 완벽하게 나의 마음을 담은 걸 못 찾아서이다. 아니면 내가 쑥스러워서일지도.
코로나 이전의 세계였다. 나를 늘 새로운 동네와 카페, 전시회에 데려가주는 나의 친구 D. 그날 그와 서울숲 근처에서 르누아르 전시전을 보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바깥에 쌀쌀한 기운을 느껴 우리는 앞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차분히 마주보고 앉아 하루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플랫화이트를 한 잔씩 마시는데 <이 노래!>가 솟아올랐다.
벨린다 칼라일의 Heaven Is a Place on Earth가 푱, 하고 떠오른 것이다. 혼자 노래를 듣다가 누군갈 떠올린 적은 있어도 함께 있을 때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그에게 들려주었다. 평화로운 저녁에 어울리는 완벽한 노래였다. 한 번 더 나눠들으니 우리의 급식시절과 어른이 되어 놀러 다닌 기억이 스쳐갔다. 급식으로 닭죽과 닭다리가 나왔을 때 그는 살을 깔끔하게 발라 내 식판에 올려주었다. 교과서가 삐죽 나와있는 내 사물함과 책상을 철마다 깨끗하게 정리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늦은 밤에 삼겹살과 맥주를 먹었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먼저 내게 떠먹여주는, 사랑의 형상화인 나의 친구.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걸지도 모를, 천국의 모습을 내게 자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많이 쓰이는 말이 좋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 보편적인 말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어떤 글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인 얼마 전에 D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카페 벽면에 배치된 글을 보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 것이다. 아름다운 글을 보는 것도 즐거운데 내 생각이 나 연락을 해주었다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나는 똑바로 앉았다. 벚꽃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 공원을 찾았던 때처럼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문학을 향한 내 일방적인 호감을 양방향으로 변환시켜주다니. 그의 따스한 행동 하나로! 너무 근사한 오후였다.
그냥 그대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는 말, 이 노래와 글은 그대를 생각나게 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연락 후에는 소소한 사이클이 반복된다. 그 말은 노래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 우리의 노래는 좋았던 당시의 기억을 데려오며 기억은 지친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작은 천국을 마주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이 두렵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생 레벨업을 할수록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은 계속 있을 테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We'll make heaven a place on earth” 우리가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든 만들어 낼 테니까.
p.s. 슬픔 이젠 안녕 워우워 다시 만난 세계는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