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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보잉 점보기에서 카타르 황태자와 만남과 초대

90년대, 외국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날은 도쿄에서 서울로 가는 만석의 747 점보기 비행 편이었는데, 출발이 무려 40분이나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한국을 공식 방문하는 특별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잠시 후, 헬리콥터를 타고 하네다에서 나리타로 도착한 그분은 바로 카타르 황태자와 총리, 그리고 여러 수행원들이었습니다.


비행 도중 서비스가 끝난 후 잠시 여유가 생겨 황태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한국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국에서 열흘 머무른 뒤 방콕으로 간다고 하셔서 제가

“아, 아쉽네요. 저도 며칠 후 방콕에 가는데요. 혹시 다시 제 비행기를 타시면 또 뵐 수 있겠네요”

라고 농담처럼 말씀드렸죠. 황태자는 웃으시며

“에어프랑스로 간다”

고 답하셨고, 저는 장난스럽게

“그 비행기 취소하고 저희 항공사를 타시면 함께 갈 수 있잖아요!”

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크게 웃으셨습니다.


며칠 뒤, 회사 시내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황태자의 한국 일정을 담당하던 관계자였습니다. 갑자기 모든 일정을 바꾸고 출국해 버리셔서 화가 났다는 얘기였죠.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며칠 후 황태자가 제 비행기에 다시 탑승하신 겁니다! 이번에는 공식 일정이 아니라 개인 여행이라 전통 복장이 아닌 캐주얼 차림이어서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여쭈었습니다.

“황태자님께는 전용기가 있을 것 같은데, 왜 민간 항공기를 이용하시나요?”

그러자 황태자는 “전용기와 승무원들은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가까운 나라에서 대기 중이다. 내가 방콕에 머무는 동안은 싱가포르에서 기다리고 있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용기보다는

민간항공사 이용 편이 더 즐거움을 드린다고 하셨지요.


6시간의 긴 비행 동안 황태자는 지루하셨는지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고, 심지어 방콕에서 저를

점심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국인 동료 승무원들도 함께 가도 되겠냐”라고 물었더니, 흔쾌히 “물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특히 삼계탕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어떤 식당이 좋을지 물으셔서 저는 “방콕 오리엔탈 호텔에서 강가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시푸드 뷔페가 아주 멋지고 맛있습니다”라고 추천했더니 바로 “그럼 거기로 가자”라고 하셨죠.


그날 저와 동료 몇 명은 황태자와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날 비행기 안에서 황태자가 향수를 엄청나게 많이 사셨던 겁니다. 저희끼리 “대체 왜 이렇게 많이 사시지? 혹시 나눠줄 여성이 많으신가?” 하며 웃었었는데, 식사 후 황태자께서 “선물이 있다”며 그 향수들을 건네주신 겁니다.


“카타르에 언제든 놀러 오십시오. 꼭 다시 초대하고 싶습니다.”

옆에 있던 총리님도 진심이라며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결국 카타르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따뜻한 초대와 배려는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받은 향수는 동료들과 나누어 오래도록 소중히 쓰며 그때의 귀한 만남을 자주 떠올리곤 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 빛나는 추억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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