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공부해서 남 주나’. 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하기 위해 많이 쓰는 표현중 하나다. 하지만 난 늘 아이들에게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한 창 고3 담임을 하던 1990년대 후반에 아이들 등교 시간은 6시 50분이었다. 7시에 유명 입시 출판사에서 제작한 방송수업 강의를 듣고 8시에 아침 보충수업을 했다. -1교시와 0교시라고 불렸다. 7시간 정도의 수업을 하고 다시 보충수업을 두 시간 더 했다. 하루 평균 총 10간의 수업을 듣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저녁을 먹고는 특별보충수업을 들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교실에서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했다. 정진반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우수한 학생들은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했다. 그야말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어울리는 시절이었다.
<<논어>><헌문>에는 “군자는 위를 향하고 소인은 아래를 향하다(군자상달소인하달君子上達小人下達)”라는 성어가 실려 있다. 군자는 자신을 바르게 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높은 차원의 공부와 수양을 하지만, 소인은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채우는 데 열중한다는 뜻이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청림출판
“새벽 별 보며 등교해서 어두운 밤에 별 보며 하교하는, 하루 16시간을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목적이 나의 성공이나 행복만을 위한 일이면 너무 억울하지 않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다는 더 큰 꿈을 꾸는 것이 힘겨운 고3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을까?” 10년간 고3 담임을 하면서 항상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더 많은 부와 더 큰 명예를 위해 공부를 한다는 세태다. 공부란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이런 목표로 공부를 하다 보면 사람답지 못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다. 살다 보면 융통성이란 명목으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목적을 위해 잘못된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 유혹에 너무나 쉽게 빠지게 된다. 불법과 편법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나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한다. 조금만 비겁하면 얼마나 편한가 보다 조금만 비겁하면 곧 완전히 비겁해진다라고 가르쳐야 한다.
독사가 아니라 먼저 소를 만들어 놓고 지식을 주입해야 한다,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할 가능성이 많은 학생일수록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회의 지도층이 되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가 사람답지 못하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와 나라에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미리미리 대비하고 평소 성실하게 생활해야 한다’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개미와 베짱이의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밥을 구걸하는 베짱이에게 개미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불렀다면, 겨울에는 춤이라도 추게’라며 매몰차게 개미를 물리친다. 인과응보의 측면에서 보면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놀리며 시원한 그늘에서 놀기만 했던 베짱이는 굶주림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죽어가야만 한다. 개미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그래야 베짱이가 교훈을 얻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솝이라면 개미가 베짱이를 집으로 들어오게 해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것이다. 인과응보가 정확하게 실현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공동체는 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은 개미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힘들어 모은 재산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하나요? 그렇게 하면 베짱이는 계속 버릇을 못 고치고 게으르게 살지 않을까요? 의문을 제기한다.
구걸을 하는 걸인에게 돈을 주는 것이 맞느냐라는 질문에도 비슷한 이유를 대며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어차피 돈을 주어도 대부분의 돈은 앵벌이를 시키는 나쁜 놈에게 들어간다며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런 이유로 도와주면 안 되는 것일까?
맹자가 말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본성인 사단(四端)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타인에게 양보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에 의하면 이 사단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 네 가지 선한 마음으로부터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비지심 이전에 측은지심이 있다. 지(智)에 앞서 인(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과응보와 정의를 생각하기 전에, 누군가의 성품을 걱정하기 전에, 앵벌이를 시키는 나쁜 놈을 떠올리기 전에 베짱이를 집에 들여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걸인에게 주머니에 있는 지폐 몇 장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나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남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안 된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한 곳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나비 이론’에 나오는 나비의 날개 짓은 이제 더 빠르고 강하게 태풍이 되어 가고 있다.
지구 전체 산소 공급량의 20%를 제공하여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지난 30년간 1/5 정도 파괴되었으며, 울창한 열대 우림이 내뿜는 산소량보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더 많은 곳으로 변해 가고 있다. 브라질 사람들은 열대우림을 파괴해서 3가지 이득을 얻는다. 삼림을 베어 나무를 수출하고, 목초지를 개간해 콩을 재배하고, 소를 키워 우유를 팔고 나중에는 쇠고기까지 수출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더 넓은 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더 깊은 열대 우림으로 들어가 열대 우림을 파괴한다. 그 결과 브라질은 세계 쇠고기 수출량 1위, 세계 콩수출량 2위 국가가 되었지만, 아마존 강 유역은 연간 3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탄소 공장’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지금은 작고한 진보 경제학자 정운영 교수는 수십 년 전 신문 칼럼에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의 원인제공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브라질 사람들을 지구의 허파를 파괴하고 있는 돈벌레라고 욕하고 있지만 지구 건너편에 사는 우리 또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아침에 우리가 보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종이, 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마시는 우유, 외식의 주메뉴인 맛있는 쇠고기의 일정 부분이 브라질에서 수입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소비행동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덕체가 교훈인 학교가 많이 있다. 이제 지덕체를 덕지체로 바꾸면 좋겠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체덕지로 바꾸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