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3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들 중에 서로 반대의 뜻을 가진 것들이 많이 있다. 영어로는 dueling proverb라고 할 수 있다. duel이 결투, 싸움이라는 뜻이니 ‘서로 싸우는 속담’ 정도의 직역이 가능하겠다.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가 대표적이다.
풀꽃 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자세히 보아, 너무 많이 알아 사랑하는 마음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헤어진 군용 단화를 기워서 신고 교정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다니셔서 얼핏 보기에는 교수님이 아니라 학교의 수위처럼 보이시는 분. 삼덕동 자택에서 경북대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는데 어쩌다 교수회의에 늦게 되면 타게 되는 버스비가 한 달 용돈일 정도로 청빈과 검소한 삶을 사셔서 한국의 간디로 불리시던 분. 자택에서 영어 강의를 하셨는데, 강의교재는 미 8군에서 미군 장병들이 보고 난 후 내버리는 주간지와 월간지들을 수거해 와 시중 가격의 3분의 1도 안 되는 실비로 공급했고, 강의료 역시 시중 영어전문학원에서 받는 액수의 5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었으며, 방과 후의 자택 과외 수익은 개인적으로는 단돈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장학금 등으로 사용하신 자선가. 한 번은 대학교 총장이 김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와 "김 교수님! 학교 내의 여러 교수들이 김 교수님의 과외수업에 대해 말이 많으니 교수직을 택하든지 과외를 택하든지 해 주면 어떻겠냐?"고 다그치자 단호하게 교수직을 버리신 분. "데모는 우리 교수들이 할 끼니 학생들은 공부나 하라요"라면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시던 분. 내가 다닌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고(故) 김성혁 교수님에 대해 내가 선배들에게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다.
몇 해 동안 ‘성혁회’에서 주최한 교수님 추모 기념회에 참석을 했었는데, 기념회에 참석한 어느 강사 분은 대구지역에서 영어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김성혁 교수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은 선배들에 따르면 장학금을 주시면서 나중에 반드시 몇 배로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는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의 교사들 수십 명이 모여서 ‘Delta’라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모임에서 우연히 김성혁교수님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님에게 직접 배운 적이 있는 선배 한 분이 교수님은 평생 세 가지를 매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실천하셨다고 한다. ‘매일 하느님에게 기도하기, 매일 걸어 다니기, 매일 한 끼 굶기’가 그 세 가지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후학들에게 장학금을 주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분명 누구나 존경할 만한 영웅이다.
그런데 과연 교수님의 가족들은 교수님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계셨을까? 버시는 돈의 대부분을 장학금으로 주시고 간디에 버금가는 청빈한 삶을 사셨다면 가족들은 아마도 여유롭게 생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능력으로는 총장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바람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승진도 못하고, 야학을 한다고 덜렁 교수직을 버리는 남편이 아내는 몹시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바깥 일 하느라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아버지와 남편이 가족들은 못내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생각해 본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 한다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 또는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영웅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성이 순간순간 밀어닥치는 불경한 감정을 항상 이길 수 있는 것일까?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히트(1995)’의 주인공 알파치노는 LA 경찰국 강력계 반장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 며칠간 밤샘 잠복수사를 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알파치노는 그쪽 분야의 전문가이자 자신의 일에서는 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후배 경찰관들의 우상이다.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은 어떨까? 두 번의 이혼 경력과 순탄치 않은 세 번째 결혼생활로 불안하고 우울한 일상을 이어간다. 결국 세 번째 부인마저 바람이 나고 만다. 경찰서에서는 영웅이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불성실한 남편일 뿐이다.
2008년 겨울, 풍광이 빼어나 애국가 영상의 한 장면을 장식하고 쌍계루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백양사에서 열린 전국교사불자연합회 겨울수련회에 참가했었다. 폭설이 내려 설산이 되어 버린 쌍계루는 산사에서 바라볼 때 과연 절경이었다. 학이 날아다니고 신선이 노닐며 선녀들이 기거할 것 같은 풍광에 혹해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가서는 정작 비경을 감상할 수가 없었으며 그저 밋밋한 등산길뿐이었다. 아! 가끔은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구나. 너무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예쁜 것을 못 볼 때도 있다고 나태주 시인에게 괜스레 시비를 걸고 싶었다.
나의 아들은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친구들이 아빠 보더니 뭐라고 해?" "지적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오우 그래, 기분 좋았겠네" 나의 말에 대한 아들은 답은 "아니, 아빠 실제로 지적이지 않잖아"였다. 역시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