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7. 15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 된다.
학교 화장실 소변기 위마다 붙어 있는 금언 중 하나다. 조금이라도 더 걷기 위해 화장실 가장 안쪽 소변기를 이용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는데, 이 글귀는 바로 그 소변기 앞 벽면에서 하루 세 번 이상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싯다르타는 기원전 6세기경 히말라야 기슭 카필라성 샤카족의 작은 나라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샤카족의 성자라는 의미의 ‘샤카무니’의 한자 음차로 ‘석가모니’라고 불린다. 부처님이 29세가 되던 해 궁전 안의 안락함을 버리고 출가한 후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6년간의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 ‘연기(緣起)’라고 한다. 잡아함경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라고 되어 있다.
능인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불교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불교대학을 다니고 포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에 가깝다. 서양의 철학이 대립과 갈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변증법, 즉 정(正)·반(反)· 합(合)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본 반면, 부처님은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 때문에 저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부처님의 세계는 대립의 동서남북이 아니라 원융의 동남서북이다. 우주만물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인드라망의 세상이다. 세상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무(無)고 공(空)이다.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존재할 수 있다. 부인이 있어야 남편이,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남자가 있어야 여자가, 네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는 남편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다. 홀로 존재하는 ‘나’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불변의 진리다. 나는 네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야만 한다. 너에게 베푸는 자비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다. 역사가 아와 피아의 투쟁으로 인해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연기를 올바르게 깨달아 자비를 실천하는 것만이 더불어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인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토인비 교수가 불교의 서양전래가 1차, 2차 세계대전이나 우주 탐험과 같은 역사적 사건보다 훨씬 더 중대한 영향을 향후 인류역사에 미칠 것으로 예측한 것도 불교의 이러한 사상 때문일 것이다.
불교의 기본교의 가운데 하나가 사성제(四聖諦), 즉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고집멸도의 4성제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집착에 의해 생기는 고통은 실천 수행을 통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 불교에서는 도제를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인 것으로 설명한다.
능인중고등학교는 대구경북의 5대 사찰이 정재를 모아 1938년에 설립한 불교종립학교이다. 교정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도 있고 부처님을 모셔 놓은 법당인 반야전도 있다. 교정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반야전은 자녀들의 학업성취를 기원하는 학부모의 염원이 땀방울로 흘러 내려온 기도도량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교사불자회 회원들에게 경전강독을 해 주신 대강백 지운스님은 반야전의 기운이 참 좋다고 하신다. 심란할 때 그냥 자리 잡고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야전 벽면에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성제 중 마지막 도제(道諦)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설명된 8정도가 8개의 벽기둥 액자에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정견(正見) :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으로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관한 지혜
정사(正思) : 올바른 사고방식이며 바른 마음가짐
정어(正語) : 바른 견해와 바른 마음가짐아래 이루어진 바른 언어생활
정업(正業) : 바른 의지와 생각에서 표출된 바른 신체적 행위
정명(正命) : 자신의 지위와 직업에 합당한 바른 생활법
정정진(正精進) : 이상과 목적의 실현을 위한 올바른 노력과 용기
정념(正念) : 자신과 주위의 처지를 올바르게 알아 항상 바른 수행에 유의하는 것
정정(正定) : 올바른 선정 바른 일과 생각에 열중하여 통일된 상태를 지속하는 것
학교 화장실 벽면의 ‘생각’은 정견(正見) · 정사(正思)에 해당하며, ‘말’은 정어(正語)에, ‘행동’은 정업(正業)에 해당할 것이다. 서두의 금언은 불교신자가 만든 것임에 분명하다. 네가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음을 여실히 깨달아 자비와 8정도를 실천하자. 그리하여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이 언덕을 넘어 저 언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