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많이도 참았다.

2018. 05. 31

by conair

그간 많이도 참았다. 올 더위 이야기다. 내가 사는 분지 대구에서도 올해는 꽤 오랜 봄을 즐길 수 있었다. 봄비도 자주 내렸다. 5월 말이 되어서야 한낮의 대기가 시나브로 숨이 막히는 열기로 변해간다. 그래도 이즘 아침엔 선선한 자전거 출근길이 마냥 상쾌하기만 하다.


오늘도 반팔 셔츠 위에 노란 바람막이 옷을 걸치고 포도 위를 달리다 아침 산책 나 온 내 눈곱 만한 개미에 화들짝 놀라 핸들을 오른쪽으로 확 돌렸다. 사망사고의 큰 교통사고인지 천운으로 비켜 간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무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연이어 염송 한다.

2018년 5월 29일은 음력 4월 15일이며 하안거 결제일이다. 음력 7월 15일인 8월 25일까지 3개월 간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이 뭣꼬’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 수행을 한다. 안거(安居)의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바르시카(varsika)로, 바르사 즉 비(雨)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인도에서는 4월 16일 또는 5월 16일부터 3개월 90일간은 우기여서, 스님들이 외출할 때 자신도 모르게 초목이나 작은 벌레를 밟아 죽여 금지된 살생을 범하게 되고 또한 탁발에도 적합치가 않아, 그 기간에는 동굴이나 사원에서 좌선수행에 전념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 선종의 맥을 잇고 있는 대한민국 조계종의 하안거다. 미물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충은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지만, 실상 익충이냐 해충이냐는 온전히 인간이 자신의 기준에서 정한 것이다. 대강백이신 지운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경상북도 성주 자비선사에는 특이한 파리채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파리채로 쓰이는 잠자리채라고 해야겠다. 방에 들어온 파리를 잠자리채로 잡아 밖으로 내 보내어 준다. 오계의 불살생은 어느 목숨까지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인지 다시 고민해 본다.

지난여름 학생 18명을 인솔해서 7박 8일 간 인도를 다녀왔다. 2011년부터 능인중학교와 국제교류를 해 오고 있는 비숍스쿨을 방문한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를 기어코 가방 속에 넣으면서 잘하는 짓인지 반신반의했다. 나의 의심은 환희로 바뀌었다. 모든 내용이 가슴에 와닿았지만 특히, ‘찻잔 속 파리_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부분에서는 임제의 ‘할’이 생생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들렸다. 내 기억 속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인도에서 많은 시간 명상 수행 경험이 있는 시인이 어느 날 스님과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리 한 마리가 오랜 비행 후의 갈증 때문인지 어젯밤에 자살사이트를 방문한 탓인지 시인의 커피 잔에 풍덩 몸을 담근다. 스님이 묻는다. ‘괜찮습니까?’ 다소 불결한 인도의 환경에 익숙해졌으며 나름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 오고 있던 시인이 답한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갑자기 시인의 커피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커피잔에서 파리를 손으로 집어내어 살려 보내고 난 뒤 돌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이제 괜찮습니다. 파리는 살았습니다.’


올바른 인륜을 지녔다고 해서 어떤 일에서든 반드시 성공하고 출세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 ‘사람다운 삶’은 살아갈 수 있다.


“마구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가 퇴근해서 사정을 듣고는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논어≫<향당>에 실려 있는 고사다. 이와 비슷한 고사가 ≪유한서≫<유관열전>에도 실려 있다. 유관은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더라도 급하게 말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부인이 유관을 시험해보려고 했다. 아침에 조회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 계집종을 시켜 관복에 국을 쏟아 더럽히도록 한 것이다. 계집종이 황급히 엎지른 것을 수습하려 하자, 유관은 말소리나 표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이 천천히 말했다. “네 손이 국에 데지는 않았느냐?”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청림출판

주장자가 법상을 때린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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