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8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 널리 쓰이는 말이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특히 담임을 하면서 이 말은 교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학기가 3월에 시작하니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새 학기에는 봄기운이 도처에 피어나는 때다. 누군가는 여자들의 옷 색깔에서 제일 먼저 봄을 감지한다지만 내게 봄의 전령사는 봄꽃이다.
먼저 동백이 정열의 붉은 빛을 발하다가 송이 째 뚝뚝 절개한다. 굵은 눈물방울 같은 슬프디 슬픈 동백의 낙화가 끝나면 매화가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뒤이어 목련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마지막으로 벚꽃이 만개했다가 1주일쯤 뒤 산개한다. 봄바람이라도 불면 벚꽃나무아래 포도는 글자 그대로 꽃길이 된다.
‘춘래불사춘’은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 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에서 유래했다. 동방규의 시 〈소군원〉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胡地無花草 / 春來不似春 / 自然衣帶緩 / 非是爲腰身) 왕소군(본명 왕장(王嬙))은 18세의 나이에 한(漢)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이후 남흉노의 호한야(呼韓邪) 선우가 원제를 알현하기 위해 장안으로 왔을 때 왕소군의 미모에 반하여 그녀를 아내로 삼아 흉노로 데리고 간다. 왕소군은 흉노와 한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여 그 후 80여 년 동안 흉노와 한의 접전은 없었다고 한다.(출처 다음 백과)
2022년은 희대의 역병 코로나가 정점에 달한 해이다. 하루 국내 확진자가 60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나 아직 정점인지도 알 수 없는 봄이다 보니 교사에게 봄을 느낄 여유는 더 없는 봄 같지 않은 봄이다.
그 와중에 첫 번째 화살을 맞고, 교사로서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들어 매일 학교 법당 반야전에서 백팔배를 하고 있는 중이니 정말이지 봄을 즐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일체유심조’를 되새겨 보지만 불면의 밤은 길어만 지고 있던 그 어느 날 너무나 위로가 되는 문구를 만났다. 그리고 바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 사서 선생님에게 염치 불구하고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해 5권의 책을 받아왔다. 그중 하나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순식간에 끝내고 두 번째로 펼친 책이다. 아침 업무를 끝내고 KBS 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듣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멋진 신세계’의 서문을 읽는 순간,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마 혼자 있었다면 정말 소리 내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멋진 신세계’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견해를 같이하듯이 만성적인 자책감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뉘우치고, 능력껏 그 잘못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되새겨서는 안 된다. 깨끗해지기 위해서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우울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가끔은 방안의 모든 밝은 것을 없애고 방구석에 쭈그리고 않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들으며 엉엉 울어야 한다고. 슬프지만 기쁜 척, 우울하지만 밝은 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고열로 시달리던 몸살감기를 두꺼운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개운해지는 이열치열의 후련함이 있듯이, 가끔은 슬픈 감정을 최대치로 배설해 내는 것이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무엇일까? 얼마 전 출근시간 KBS ‘출발 FM과 함께’ 디제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고 소개한 곡은 클래식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검색해 보았다. 가요는 잘 안 보이고 클래식과 팝송이 많다. 클래식은 헨델의 ‘울게 하소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 그리그의 페르 귄트 제1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 등이 눈에 띈다. 그중 ‘오제의 죽음’이 나의 슬픈 클래식 1위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흐린 날엔 첼로를 듣는다. 묵직한 저음의 첼로 음악은 대체로 슬픔으로 다가온다. 비장한 멜로디에 요절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인생을 떠올리며 듣는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은 언제나 ‘슬픔’이다.
팝송은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 쟈니 캐시의 ‘Hurt’, REM의 ‘Everybody Hurts’ 등이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릴 때 자주 듣는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도 있다. 그러나 내게 가장 슬픈 팝송은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이다.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우리들의 무대, 음악페스티벌’ 학생들 공연이 열렸다. 클래식, 댄스, 밴드부 공연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너무나 알차 모두들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클래식 협연, 교사와 학생의 합창, 인근학교 여학생들의 댄스축하공연 등의 다채로움으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공연에 앞서 인사말을 했다.
“국영수로 공부하고 음미체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국영수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음악, 미술, 체육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을 들으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