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9
학교의 각 특별실에는 보안점검표가 붙어 있다. 각 실의 책임자는 퇴근하기 전에 보안점검표에 서명을 해야 한다. 제대로 서명을 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아 직원회의 시간에 매일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직원회의가 끝나고 시청각실을 나오는데, 한 부장선생님이 “저는 잘하고 있는데 왜 모든 선생님이 잘 안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라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서운함을 표시했다. 모든 선생님이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사과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되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등등은 우리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절대적인 주장을 많이 한다. 세상에 예외 없는 규칙은 있을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점점 ‘절대로’, ‘도대체’, ‘반드시’ 등의 표현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는데, 혹 내가 접하는 정보가 가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가 없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절대 악과 절대 선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럴 수도 있지’를 자주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나의 주장을 버리고 항상 남의 주장을 쫒으라거나 양시양비론에 빠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어에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만은 절대적인 진실일까? 그렇다면 예외 없는 규칙이 있는 것이 되니 이 또한 절대적인 진실에 해당되지 못한다. ‘dueling proverb’라는 영어표현도 있다. 서로 다투는 모순되는 속담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침묵이 금이다’, ‘개도 짖어야 먹이를 준다’ 등이 대표적인 ‘dueling proverb’이다. 사전에 속담은 ‘오랜 세월을 거쳐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견해를, 간결하고도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 말은 속담이 우리가 믿고 따를 만한 신빙성이 있는 가치임을 암시하는데, 그 속담에 반대되는 속담이 또 있다니, 그럼 우린 어떤 속담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dueling proverb’가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씩 자신이 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승자박의 어려움에 처해지는 경우를 본다. 특히, 공인의 경우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여러 경로로 증거화 되어 있기 때문에 옛날의 일들이 지금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드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어찌 공인만 그러하겠는가? 부부싸움에서도 지난날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음메 기죽어’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안 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등의 말은 이제 우리의 어휘 목록에서 삭제하고 ‘그럴 수도 있지’를 생활화하자.
우리는 무엇인가를 주장할 때 우리의 기억력을 맹신한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니 그럴 리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의 기억이 잘못된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가?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을 소환한다. 하지만 다음의 실험 결과를 보면 다시는 우리의 기억에 의존하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아래의 실험들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열두 발자국’ 등의 저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자주 인용하는 실험들이다.
실험 1 :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설문을 작성하게 한 후 몇 달 뒤에 2차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자가 “당신은 사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참가자는 “저는 원래 반대였어요. 일관되게 그랬어요.”라며 확신에 차서 말한다. 연구자가 사형제에 찬성한다는 참가자의 설문을 제시해도 자신이 기억을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참가자는 거의 없다. 대신 “그때 질문이 애매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분위기 때문에 체크했을 수도 있죠”“이건 제 진짜 생각을 반영한 건 아니에요”등의 반응을 보이며 기억과 정체성을 기록 위에 둔다.
실험 2 : 참가자에게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녹음한 후 수개월 뒤 동일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자신은 줄곧 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참가자에게 현재의 입장과 정반대 되는 녹음을 들려주었지만 “제가 저렇게 단정적으로 말했을 리 없어요” “맥락이 잘린 거 아닌가요?” “그때는 정보가 부족했잖아요”등의 반응을 보였다.
실험 3 : 참가자에게 감정 일기를 작성하게 한 뒤 몇 주 후에 다시 읽게 하면 대부분의 참가자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와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났다고요?” “그때는 그냥 감정적으로 쓴 거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어요.”
정재승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로부터 잘라내며 기억은 사실을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자아를 유지하는 장치”인 것이다. “뇌는 기억을 고쳐 자기를 바꾸는 것보다 증거를 고쳐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 “사람은 기록을 해석의 대상으로 만들고, 기억을 진실의 자리에 놓는 것”이다.
내 생각의 신빙성을 더 강하게 어필하고 싶을 때 우리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과연 그러한가? 내 눈에 장착된 필터는 없었을까? 똑같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노인을 보고 어떤 사람은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본다. 분명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일지도 모른다.
공자의 제자 안회가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다. “어느 마을의 관리는 모든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마을의 관리는 모든 백성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마을의 관리는 대부분의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지만 일부로부터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관리가 제일입니까?” 공자는 마지막 관리가 최고라고 답한다. 이유인즉, 모든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관리는 십중팔구 백성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독재자일 가능성이 커단 것이다. 백성 중에는 도둑도 있고 사기꾼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려면 도둑질하고 사기 치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나의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오류가 많을 수도 있다. 공자가 아닐 수도 안회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