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2026. 01. 30

by conair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냈으며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스테판 에셀이 쓴 88쪽의 짧은 책 ‘분노하라’에서 저자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라고 일갈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1982년도에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 프로야구가 출범되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기 위한 3S(Sports, Screen, Sex)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고 본다. 실제 많은 나라에서 독재는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생겨나고 정권을 유지해 가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세뇌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셀의 지적처럼 우리는 늘 우리 주위의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잘못된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 어느 정치가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인 것이다.


대학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해 도피 생활을 해오던 중, 19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어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김근태 씨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정작 물고문도 전기고문도 아니었다고 한다. 여러 날 잠을 재우지 않던 햇살 따뜻한 어느 봄날 오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성의 멘트, ‘오늘은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김밥이라도 싸서 인근에 꽃구경이라도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를 듣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나의 투쟁을 알고나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대중과 유리되어 있으며 자신의 몸부림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두렵고 무서웠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온 우주가 하나의 그물과 같은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물의 한 군데에 흠집이 생기면 그 영향은 일파만파로 그물의 저쪽으로 번지게 된다. 그래서 연기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나 혼자 독야청청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망가지면 세상이 망가지면 나도 망가진다. 사회가, 세상이 망가지기 전에 사회와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불의와 잘못에 분노해야 한다.


내가 직접 불의와 잘못을 고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우리를 대신해 용감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세상에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영웅들이 있다. 오늘 당장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단체와 사람들을 찾아보고 후원하고 응원하자.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다. 지금은 저항하고 분노하며 행동하는 양심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어야 할 때다.


대학시절 나는 늘 다소 침울한 얼굴로 다녔던 것 같다. 아니 그런 표정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시절 1980년도 초반은 전혀 정의롭지 않았으며 도처에 불의와 모순이 가득하게 보였다. 그러한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서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생은 늘 고뇌에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를 만난 안사람은 나중에 그 당시 나는 몹시 무서워 보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나의 생각은 고스란히 나의 얼굴에 드러났음에 분명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면 그 전날은 대청소의 날이 되었다. 당시 생각으론 평소에 잘하지 누가 온다고 하니 호들갑을 떠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너무나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자라 남의 말을 잘 듣는 나이인 이순(耳順)에 가까워지다 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장 나의 집에 손님이 온다면 나는 열심히 안 하던 청소를 한다. 청소는 손님을 맞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예의에 해당하는 것이 된 것이다.


나의 대학 시절 생각은 나의 얼굴 미간에 굵은 주름을 남겼다. 그 주름을 보며 늘 되새긴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는 밝아야 한다. 세상이 밝고 아름다운 곳이 되길 바란다면 현재의 불의와 더러움에 분노할지언정 나는 밝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하여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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