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마라

2026. 02. 05

by conair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일갈한다. ‘천상천하 유아독(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일곱 걸음으로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윤회를 벗어난 부처님이 첫 일성으로 자기애 끝판왕이 할 소리를 하시다니 어찌 된 일인가? 얼핏 들으면 나만 존귀하다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의 망언처럼 들리지만 이 말은 실상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귀하다는 뜻이다. 또한 나는 개별적 '나'가 아닌 인간의 본래 성품인 참된 '나'를 의미한다. 여기서 나는 부처님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다.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진 존귀한 존재다. 부처님의 깨달음인 연기(緣起)의 법으로 세상을 보면 나는 너 없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나는 너이고 곧 모두인 것이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고 고로 모든 것은 성불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지극히 이분법적인 서구의 사고 개념에서 사라져야 할 말 중 하나는 존귀함 일 것이다. 왜냐하면 천함이 있어야 존귀함이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존귀하니 천한 존재는 없고 고로 존귀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익숙한 우리는 그다음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마땅히 내가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상 천상천하 유아독존보다 삼계개고 아당안지에 더 잘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평교사, 기간제 교사, 행정실장, 행정실 직원, 청소하시는 여사님, 실무원,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수위 등등 모두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조직이 돌아간다. 가끔씩 그 많은 일들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척척 처리되어 가는 것을 보면 신기한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나가는 모두는 존귀하다. 팔정도의 정명(正命)을 잘 지켜나가는 모두는 존귀하다. 자신의 지위와 직업에 합당한 바른생활을 해나가는 모두는 존귀하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구성원은 그 직위와 관계없이 존경을 받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무엇(What) 보다 어떻게(How)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직업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에 나오는 문혜왕과 포정 중 누가 더 존귀하며 누가 더 우위인가? 문혜왕은 포정의 소를 해(解)하는 기술(技)에 감탄했지만 포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도(道)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와 비견해도 더 존귀한 사람이라고 여겨져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가 너무나 쉬워졌다. 개인 정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공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카페를 지나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통유리로 된 창가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이 무슨 책을 보는지 남들에게 다 보여도 괜찮다는 듯, 남의 시선은 상관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듯 통유리 창가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식당이든 커피숍이든 타인의 시선에 훤하게 노출되는 창가 쪽 자리가 인기가 많다.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이 필요해 칸막이를 쳤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TMI를 하는 현대인들의 내면에 깔린 욕망은 무엇일까?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서만 행복감을 느끼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행위는 아닐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버젓이 노출하는 바람에 현대인들은 타인과의 비교우위에서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삶보다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현대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존귀함에도 항상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우울해하고 불행해진다. 유명인의 결혼과 파혼, 그들의 여행과 파티에 신경 쓰는 시간을 줄이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많은 사람들이 가르쳐주고 있지만 오늘도 나는 소셜 네트워크를 살피고 너튜브를 신이라 칭송하며 그들의 차박을, 그들의 여행을, 그들의 연애사를 뒤진다.


직지사 말사인 삼성암은 비구스님이 거처하는 조용한 암자이지만 내가 가본 어느 법당보다 정갈하고 단아하게 꾸며져 있다. 꾸불꾸불 차를 타고 좁은 길을 올라가다 보면 길가에 이런 문구가 여럿 펄럭이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비교하지 마라’, ‘따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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