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1
여행하기를 좋아해서 매달 돈을 모으고 있는 모임이 4군데다. 코로나도 끝나고 다시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망설이는 친구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배탈 등으로 고생을 해 여행단에 민폐를 끼쳤다며 더 이상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급기야 나의 첫 병원입원 사례까지 동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까지 인용해야 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병원 입원은 2010년 여름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 기간에 발생했다. 한 달간의 해외연수는 2003년 밴쿠버 연수 이후 7년 만이다. 5년마다 신청할 수 있는데 사스라는 전염병 때문에 몇 해 실시하지 못하고 해서 7년 만에 미국 샌디에이고를 가게 되었다. 영어로 하는 수업을 하루에 6시간씩 듣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 후에는 하나라도 더 체험을 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숙소에 들어오곤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병원에 실려 간 그날도 동료 선생님들과 샌디에이고 구장인 펫코파크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는 다소 기름진 중국음식이었다.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데 어지러웠다. 기사도를 발휘한답시고 나의 등에는 동료 여선생님의 노트북이 메어 있었다. 땅이 울렁거려 걷기가 힘들었다. 앞서 가던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선생님을 불러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모두들 내가 그 여선생님을 부축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누워 버스를 기다리는데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911에 전화하려는 찰나에 버스가 와서 일단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저녁에 먹은 음식을 다 확인했다. 그 와중에도 같이 탄 젊은 미국인 몇 명이 나를 보고 술을 얼마나 먹었느냐는 등의 비난을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룸메이트의 등에 업혀 숙소로 들어와 한국의 의사에게 전화를 해 토하고 어지럽다고 하니 뇌졸중일지도 모르니 빨리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이웃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차를 타고 간 병원은 veterans hospital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보훈병원 같은 곳이다. 밤 11시 넘어가서 몇 가지 검사를 한 뒤 새벽 4시쯤 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Script라는 큰 병원에서 4일간 머물면서 심전도, 약물을 이용한 위내시경 검사 등을 한 것 같다. 이틀 까지는 물 만 먹어도 토를 했다. 병실은 2인실이었는데, 혼자 사용했다. 연수 선생님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마치 사이보그 인간처럼 온몸에 전선이 부착되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약간의 부정맥이 있는 것 외에 병원에서 찾아낸 것은 없이 토하는 증상이 완화되어 퇴원을 했다.
퇴원하기 전에는 물리치료사의 치료를 받았는데, 내 귀속에 아주 아주 작은 돌이 떨어져 나와 어지러울 수 있다고 하며 침대에 걸터앉아 왼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획 쓰러지고 반대 동작도 10회씩 하면 치료와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석증 치료 방법이었다. 그 물리치료사는 내가 만난 가장 친절한 외국인 여성이었다.
퇴원을 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로 2박 3일 여행을 가고 없었다. 같이 간 장학사 한 분 만 불행하게도 여행을 가지 못하고 나를 돌보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이다. 왜 어지러웠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한국에 와서 심전도 검사를 해 보았지만 부정맥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 6시간씩 영어로 하는 수업을 듣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밤에 들어와 과제를 하는 반복된 생활에서 온 피로와, 기름진 중국 음식을 허겁지겁 먹은 것이 겹쳐 심하게 체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로부터 12년 뒤 이석증을 앓았으니 어쩌면 이석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모두들 병원비가 궁금할 것이다. 미국의 병원비가 비싸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왔으며 치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재미교포 이야기도 종종 듣고 있지 않은가. 첫 번 째 병원에서는 며칠 뒤 병원비 청구서가 날라 왔다. 의외였다. 재향군인병원이어서 그런지 20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에이 별로 안 비싸네 하며 안도했었다. 3박 4일 입원한 병원에서는 귀국 1주일 전에도 청구서가 오지 않아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아직 계산 중이라고 했다. 1주일 뒷면 귀국을 해야 하니 대략적인 금액이라도 알려 달라고 하니 수화기를 넘어 들려온 숫자는 대충 30,000달러였다. 우리 돈 3천3백만 원이다. Sorry? Pardon? 등을 써가며 몇 차례 확인을 했지만 틀림없는 3천3백만이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니, 미국에서는 보험사와 병원이 의료비를 협상하는데 통상적으로 10에서 15%를 깎는다고 했다. 당시 내가 든 5만원 짜리 여행자 보험의 보장 범위는 3천만 원이었다. 결국 나는 한 푼도 들지 않았지만, 보험회사는 그 이후 이름을 바꾸었다. 나의 케이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어지러움과 구토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피곤하면 또 어지러울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에 초점이 잘 맞추어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특히 차를 타고 가다가 이런 생각이 들면 갑자기 두려워졌다.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엄습해 오면 공황장애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안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던, 난생처음의 병원입원으로부터 1년 뒤 또 미국연수를 신청했다.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전국의 40명 영어선생님을 선발해 약 한 달 반 텍사스 연수를 보낸다는 공문을 보고 많이 망설였다. 결론은 지금 두려워 연수를 신청하지 않으면 결국 해외여행을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가자’였다. 참고로 나는 ‘doer’다. 망설여질 땐 대체로 저지르고 본다, 이 점이 자신과는 가장 다른 점이라고 아내는 말한다.
한 달 반의 텍사스 연수는 가장 멋지고 보람 있는 연수였다. 특히, 2주 정도의 홈스테이와 고등학교 방문 일정이 압권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미국 고등학교 방문이 아니라 2주일간 머무르면서 미국수업을 참관하기도 하고 직접 한국을 소개하는 수업을 하기도 했다. 인근 중학교 음악수업을 참관하러 가서는 우리나라 민요 ‘도라지 타령’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발음을 가르쳐 주고 노래가사를 영어로 번역해 주는 귀한 경험도 했다.
홈스테이 호스티스가 근무하는 대학교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받기도 했다. 이 분은 나처럼 미국을 방문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초청해 그 나라의 노래와 함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방송이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달라스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노래 다섯 곡을 소개했는데, 윤도현의 ‘나는 나비’, 조수미의 ‘나 가거든’, 원더걸스의 ‘Nobody’, 백지영의 ‘대시’, 소녀시대의 ‘Gee’ 등을 소개했다. 참고로 2012년도 소녀시대의 인기는 많은 미국인들을 매료시킬 만큼 대단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지상파 메인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학생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수업을 할 때면 항상 당시 방송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이미 ‘Girls Generation’을 알고 있었다. 미국 방송에 출연한 음성파일을 한 동안 한국의 영어수업시간에 들려주는 자랑질을 할 수 있게 해 준 참으로 신기하고도 유익한 연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연수는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연수가 아니어서 연수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일주일 정도 꿈에 그리던 미국의 심장 ‘맨해튼’을 방문할 기회도 가졌다.
만약 또 쓰러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텍사스 연수를 포기했었다면 내 인생의 독특하고도 값진 추억하나가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고등학교 시절 즐겨 듣던 사이먼 앤 가펑클이 50만 관중 앞에 공연을 한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이스트 리버와 허드슨 강을 라이딩하는 값진 경험을 놓쳤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그때 두려움을 떨치고 연수를 선택한 내가 대견스럽다.
보고 또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맷데이먼의 본시리즈와 덴젤 워싱턴의 이퀄라이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한국 영화 중 하나는 ‘최종병기 활’이다. 몽고 장수 쥬신타로 나오는 류승룡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압권인데, 정작 내가 좋아하는 대사는 신궁으로 동생 자인을 구하는 남이 역의 박해일에게서 나온다. 이미 승리를 예견한 듯 남이를 향해 비웃는 듯 내뱉는 쥬신타의 ‘이 계집을 희생 재물로 삼을 생각이냐. 바람도 널 도와주지 않는구나’라는 말에 심장에 꽂혔던 화살을 뽑아 깊은 호흡으로 숨을 멎고 활을 쏘는 남이가 하는 독백,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아 멋지지 않은가. 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 부릅뜨고 마주하며 극복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단톡방에 올려서 설득당한 것인지 친구는 하노이 여행에 동참하였다. 몇 주일을 낑낑대며 롯데호텔 하노이, 닌빈투어, 하롱베이 카펠라 크루즈를 예약하는 럭셔리 베트남 여행을 준비했다. 나의 텍사스 연수가 그러했듯이 이번 하노이 여행이 내 친구에게 그 어느 여행보다 유니크하고 즐거웁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