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26. 03. 31

by conair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까 아니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쉬울까? 영어 속담에 유유상종을 의미하는 같은 종류의 새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Birds of a feathers flock together)라는 표현도 있고,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인다(Opposites attract)라는 표현도 있다.


얼마 전 친구모임에서 위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부부를 비교해 본 결과 대략 반반 정도 갈렸다. 한 친구는 대학 때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여자 친구를 자신의 어머니가 둘이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그 친구는 자신과는 정반대인 대단히 외향적인 부인과 잘 살고 있다.

나의 경우는 유유상종에 해당된다. 아, 외모로 보면 정 반대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나와 반대로 안사람은 아담 그 자체다. 대학시절 선배들은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한 ‘멀대’와 작지만 다부지고 똑 부러지는 ‘아담’이 나오는 만화의 주인공에 우리를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성격적인 면에서 내가 다소 모험을 좋아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나와 아내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사색을 좋아한다. 책 읽기도 좋아한다.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흐린 날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나와 아내는 많은 것을 같이 한다. 한 사람이 드라마를 좋아해서 보고 있으면 같이 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를 같이 시청한다. 액션 수사물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같아 넷플릭스의 영화를 고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아파트 뒷 산 용지봉도 같이 다니고 걷는 것도 좋아해 애완견 테리와의 산책도 거의 같이 간다. 부부의 교육관이 달라 괴롭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자주 듣는데, 우리 부부의 경우 같아도 너무 똑같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아이를 꾸중하고 있는 일이 가끔 있었다. 아내를 진정시키고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나름대로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아이의 반응은 ‘아빠, 엄마랑 짰제’였다. 사투리 ‘짰제’는 미리 짰다는 뜻이다.


취미생활도 같이 하면 좋다는 생각에 골프도 같이 배웠고 산악자전거도 같이 시작했다. 아내는 몇 미터 곁에 사람이 지나가도 자전거를 세워야 할 정도로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지만 무조건 산악자전거를 같이 샀다. 몇 번을 넘어지고 하면서 이제 가까이 누가 지나가도 내리지 않고 탈 수 있을 때쯤 친구와 함께 세 명이서 낙동강 강정보에서 부산까지 1박 2일 자전거 여행을 했다. 헐티재를 지나 청도, 팔조령을 거쳐 집으로 오기도 했다. 낙동강, 섬진강, 금강 등 장거리 라이딩도 여러 번 했다. 월요일마다 진밭골 업힐 라이딩을 하는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데이트폭력’이라고 한다.


읽는 책도 비슷하다. 한 사람이 먼저 읽고 재미있다고 건네주면 거의 읽는다. 대개의 경우 재미있다고 한다. 같은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주인공의 아픔을 공유하며 막걸리를 마시는 날은 더 행복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아내를 제대로 알고 있으며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의구심이 드는 일을 겪었다. 읽을 책을 찾다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안사람이 추천해 주어서 읽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오베라는 캐릭터에 한 동안 푹 빠져 지냈다. 안사람에게 이야기하니 자기도 재미있게 읽었으며, 그 이후 베크만의 다른 책 ‘베어타운’과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 두 권을 더 사서 읽었다는 것이다. 평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내에게 읽을 책을 추천받곤 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질문과 함께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아내에게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하며 아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오만하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해 온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교육청에서 책을 읽어 주는 앱 ‘윌라’ 3개월 무료 이용권을 주어 읽어 주는 책을 통해 독서를 하고 있다. 희한하게 잠자리에 들기 전 켜 놓은 윌라는 어느 순간 듣는 사람 없이 열심히 혼자 진도를 나가고 있다. 그래도 걷기를 하거나 운전을 할 때 들으면 부족한 독서량을 채울 수 있어 자주 애용을 하고 있다. 최근에 듣고 있는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인데 제4권 14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경쟁자들을 따돌린 가장 빠른 정자가 난자를 수태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빠른 정자 하나가 아니라 수백의 정자가 동시에 난자의 주위에 다다른다. 거기에서 정자들이 편모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다리고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가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난자의 문 앞으로 몰려온 많은 청혼자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승리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난자다. 그렇다면, 난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자를 선택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그 문제를 탐구한 끝에 최근에 답을 찾아냈다. 난자는 <자기 것과 가장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는>정자를 낙점한다는 것이 그 답이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난자는 자기 위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근친 결합의 문제라도 생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염색체는 자기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것과 결합해서 더욱 풍부해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다. - 에드몽 웰즈<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3권’


산책을 하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을까 다른 점이 많을까?’ 아내는 내 예상과는 달리 다른 점이 많다고 답했다. 나는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않단다. 내가 당신도 잔뜩 흐린 날 좋아하잖아 했더니 아니라고 한다. 흐린 날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이 좋다고 한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같은 것 아니냐고 하니 절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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