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재 피서 1

2018. 7

by conair

언론에서 ‘110년 만의 폭염’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는 2018년도의 불가마 더위는 처서가 코앞인데도 일부지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더위가 길어질수록 ‘여시재’에서의 피서가 그리워진다. 여행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집인 ‘여시재’는 강원도 인제에 있다. 여행작가이자 시인인 이호준 님의 집필실이 있는 곳이다. 차우차우 ‘아리’가 있고 전각장인 김주표 님이 있는 곳이다. 사강천, 자작나무 숲, 백담사, 12 선녀탕, 마장터가 가까이 있는 곳이다.

다소 이상한 조합으로 2박 3일의 피서를 떠났다. 친구 부부, 친구 부인의 언니 부부와의 여행이라니. 여행은 어디를 가는가 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친구와 의형제라도 맺지 않은 관계에서야 어떻게 이런 조합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상한 조합은 이상하리 만큼 즐겁고 흥겨운 여행길이 되었다. 그 가운데에 ‘행복바이러스’ 인 친구의 부인이 있었다. 늘 그런 것처럼.

여시재 앞 사강천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물이 미지근할 정도로 날씨는 더웠지만 그래도 물에 몸을 담갔다가 나오면 다소 한기를 느낄 수 있어서 제대로 피서 기분을 만끽했다. 그날 저녁 여시재 마당에는 술과 노래와 시가 있는 판이 벌어졌다. 함께 여시재에 묵게 된 유영희 시인의 지인들이 팬플룻을 불고 노래를 불렀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여시재에 딱 맞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애꿎은 술만 축냈다.

다음 날 이호준 님의 추천을 받아 자작나무 숲으로 갔다. 다소 평탄한 길을 1시간 정도 걸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회색빛의 키다리 나무숲은 그야말로 형언이 불가능한 장관이었다. 이런 곳에 오면 입을 다물고 그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작나무 숲 한 귀퉁이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소회를 적어 보았다.

‘자작나무에 새겨진 삶의 아픔을 보라. 우리의 아픔도 밖으로 내놓으면 저럴까. 만지면 회색이 묻어 날 것 같은 자작나무의 표면은 비단같이 부드럽다. 자작나무를 안아주면 삶의 질곡에도 우리는 비단 같은 성정을 간직해야 한다고 자작자작 얘기해 준다.’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가 물과 햇빛이다. 주변에 촘촘하게 다른 나무가 있을 경우 대부분의 나무는 햇빛을 잘 받기 위해 먼저 키를 키운다. 빨리 크려면 아래쪽에 있는 자신의 가지를 없애야 한다. 물길을 차단해 고사시켜 버린다. 그래야 키를 키우는데 영양분을 온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나무들의 아랫부분에는 가지가 없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나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유독 자작나무는 가지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모두 상흔으로 남아있다. 큰 가지는 큰 상흔이 작은 가지는 작은 상흔이 곰보자국처럼 남아 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하고 치열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굉장히 거칠어 보이는 자작나무의 표면은, 그러나 비단같이 부드럽다. 자작나무를 꼭 안아 주었다. 귀를 대고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올곧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내가 쳐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자작나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오후에는 12 선녀탕으로 물놀이를 갔다. 벌써 오후 3시 50분. 5시까지 내려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관리인의 말을 뒤로하고 총총걸음으로 선녀들을 만나러 갔다. 결국 시간이 없어 제1선녀탕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적당한 곳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다시 총총 하산했다. 선녀는 보았냐고? 집에 있는 선녀 간수하기도 힘든데 뭘...

다음날 강원도에는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이호준 작가와 아쉬움의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한 뒤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는 비가 오는 날이 멋지다는 이호준 님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네 번째 방문이지만 기대감에 부풀어 백담사행 순환버스를 탔다. 갑자기 내린 비로 계곡은 굉음을 내며 돌진하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포말이 장관이었다. 백담사는 우중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백담사의 관음전, 나한전 등 법당과 만해기념관을 둘러보았다. 30년 전 언론사 시험의 논술 주제가 떠올랐다. ‘만해의 백담사와 전두환의 백담사를 논하시오.’ 다행히 언론사에 합격은 했지만 꾸역꾸역 장수는 채웠지 잘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없어 그냥 귀갓길에 오르자는 의견을 살짝 무시하고 이호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마장터로 향했다. 비가 와서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주차관리인의 염려는 사실이 되었다. 마장터로 가는 개울은 남자들은 겨우 용기를 내어 건널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건너기가 불가능했다. 아쉬움에 남자 3명만 잠시 마장터로 향했지만 이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보고는 바로 내려왔다. 지금의 아쉬움이 뒷날 반가운 여시재 방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로를 해 보며 대구로 향했다.


자작나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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