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말 아무나 뽑으면 안 된다. 팀 무너뜨리는 Sr, 살리는 Jr
"이 분, 배웅하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요."
면접이 끝난 뒤, 저와 함께 면접을 진행한 상사께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었습니다.
합류하게 되면 상사가 될 분이 있는 면접장면에서는 그토록 친절하고 세심했던 그 후보자가,
면접 장소 문이 닫히자 귀찮다는 듯 질문을 흘려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후보자를 다시 찾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론은 달랐습니다.
어느 시기나 함께 할 구성원을 찾는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성장기 조직의 HR은 "사람이 부족해서 문제"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다양한 이슈에 대해 ‘사람’ 핑계를 삼기에도 좋은 여건이라는 것은 배제하더라도요)
그래서 채용 시즌이 열리면,
"일단 시니어 한 명만 빨리 뽑자", "경력자 한 명만 들어오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말을 더 먼저 떠올립니다.
"아무리 급해도 정말 아무나 뽑으면 안 된다”
"특히 시니어 한 명은, 팀을 살릴 수도 있지만 팀의 공기를 통째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 글은, 피플팀이 피플그룹으로 확장되던 시기에 제가 직접 겪었던 채용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앞선 글에서 썼던 것처럼, 제가 일하던 회사는 HR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폭풍 성장기 조직
300인을 향해 가는 헤드카운트
인사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타이밍
이제 더 이상 "HR팀 1개"로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었고, 회사에서는 피플팀을 피플그룹으로 격상시키기로 했습니다.
구상은 이랬습니다.
나는 계속 인사기획(피플팀)을 맡고
새로 입사할 시니어는 채용·인사운영 팀을 맡고
두 팀을 묶어 피플그룹으로 운영하는 그림
전편에서 제가 "팀장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았다"라고 썼던 것도
바로 이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과도기 설계의 일부였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자리가 먼저 생기면, 회사 전체에 혼란을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떤 시니어가 입사할 것인가"가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시니어 후보가 몇 명 올라왔고, 그중 한 분은 대기업에서 막내 시절부터 성장한 경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우리 팀에는 없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여러모로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면접을 진행하면서 제 머릿속에 계속 이런 말이 맴돌았습니다.
"스펙은 맞는데… 우리랑 안 맞을 것 같다."
상사 앞에서는 무척 친절했습니다.
질문에도 정성껏 답변했고, 본인이 맡았던 일들을 구조적으로 잘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실무진 인터뷰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이 나왔습니다.
실무진이 "이 업무는 어떻게 진행하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 후보자는 귀찮다는 듯 답했습니다.
"그런 건 그냥 이렇게 하시면 돼요."
상대의 맥락을 들으려 하지 않는 답변.
미묘하게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
본인이 "강자"라고 느끼는 순간, 질문에 귀찮다는 티를 숨기지 않는 태도.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분은 우리 팀원들에게 '선배'라기보다, 리더가 없는 자리에서 왕 노릇을 할 스타일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난 뒤 저는 분명히 의견을 내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후보자를 다시 찾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론은 달랐습니다.
태도적인 부분은 우리의 좋은 조직문화로 "조금 케어하면 된다"
우리 팀에 없는 경험을 가진 사람
가장 빠르게 입사 가능한 후보
이 세 가지 이유로 "일단 모셔오자"는 쪽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의 저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상사분들께서 내가 못 보는 장점을 더 크게 보셨을 테니 믿어봐야겠지"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면접에서 느꼈던 그 '싸함'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리더가 없는 자리에서 그 시니어는 "선배"가 아니라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팀원이 제게 정말 조심스럽게
"그 시니어와 함께 일하면 힘이 너무 빠진다, 함께 일하기 싫다"라고 했습니다.
(평소 부정적인 표현을 잘하지 않는 구성원이었기에, 그 구성원을 비롯한 팀원들이 이런 상황을 겪게 만든 저 스스로가 참 싫었습니다)
그 팀원은 그 시니어에게 일과 관련하여 최대한 묻지 않는 대신, 혼자 끙끙대며 일을 처리하거나 몰래 다른 팀원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죠.
후배들에게는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질문에는 귀찮다는 티를 숨기지 않았고
본인이 힘든 건 크게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
후배들은 업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불안해졌습니다.
"내가 이 회사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일해야 하는 팀이라면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건,
그 시니어 본인이 금방 퇴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긴 잠깐 있다가 나가면 되죠."
"이 정도 회사면 사실…"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리는 태도.
HR조직 내부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그냥 "실망"이 아니라,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HR이 조직과 구성원 사이에서 가장 꼼꼼해야 할 부서인데,
여기에서 이런 태도를 보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난다."
“현업 조직에 가서 어떤 언행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조직이 망가지지 않도록 그 시니어를 "잘 내보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퇴사 과정에서도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조직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그러한 모습은 제 입장에서는 우리 조직 구성원들에 대하여 최소한 동료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여겨졌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여러 번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나간 게, 팀에게는 다행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고 팀원들과 함께 서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니어와 비슷한 시기에 합류했던 주니어 두 명은 팀을 살려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존 문화를 존중하며, 공감하고 스며드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이건 원래 이렇게 해왔어요"가 아니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혹은 “이렇게 시도해 봐도 될까요?”라고 묻는 태도
본인이 맡은 영역에 대해 "전담 책임자"라는 인식을 갖고 작은 부분부터 개선안을 내보려는 시도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먼저 변한 건 업무 방식이었습니다.
기존에 "원래 이렇게 해왔던" 절차들을 스스로 더 간단하게 재구성해 보고,
엑셀/시스템을 활용해 반복 업무를 줄여보려는 시도도 하고,
"이건 이렇게 하면 우리도 편하고, 현업도 편할 것 같다"며 제안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연말이 되었을 때, 저는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보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시범 적용해 봐도 될까요?"
예전에 라면 높은 확률로 제가 "이렇게 해보자"라고 먼저 제안했을 내용들을 구성원들이 먼저 발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솔직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몇 달 전 시니어 한 명 때문에 팀 전체가 흔들렸던 기억이 떠올랐고,
지금 이 주니어 두 명이 그때의 상처를 조용히 메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시니어 한 명의 태도는 팀의 공기를 무너뜨릴 수 있고,
주니어 두 명의 태도는 팀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있구나."
이 경험을 지나며 저는 "채용"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면접장에서 상사와 실무진 앞에서 태도가 다르다면, 입사 후 그 간극은 더 커집니다.
"리더가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할 사람인지 상상해 보세요.
경력과 경험은 중요하지만, 잘못된 태도는 팀 전체의 생산성과 신뢰를 한 번에 무너뜨립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이 사람이 어떤 속도로 배우는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려는지"가 팀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작은 개선이라도 스스로 제안하는 사람이, 결국 팀을 바꿉니다.
이 팀이 지금 어떤 단계인지
어떤 문화를 가진 팀이 되고 싶은지
그 안에서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것을 같이 보는 과정이 스펙·연차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특히 성장기 조직에서 외부 환경이 좋고, 사업이 잘될수록 "사람이 모자라서 문제"라는 말 뒤에 "그러니까 일단 좀 빨리 뽑자"가 따라오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렇게 뽑은 한 명이 이후 몇 년 동안 팀이 회복하는 데 쓸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빼앗길 수 있습니다.
HR조직에서조차 이럴진대,
다른 현업 조직에서는 이 영향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채용을 이렇게 정의해보려 합니다.
"채용은 스펙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관계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 사람을 뽑았을 때 지금 있는 팀원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이 사람의 말투와 태도는 팀의 일상적인 대화에 어떤 색을 입히게 될지
1년 뒤, 이 사람이 팀에 남기고 갈 흔적은 무엇일지
이 질문들을 조금 더 자주 꺼내보면 "정말 아무나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이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팀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다가옵니다.
사람과 조직 사이에서, HR로서 다시 한번 이렇게 적어 두고 싶어 졌습니다.
"시니어 한 명이 팀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주니어 두 명이 팀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채용 앞에서 '정말 아무나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오늘도 저의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서는 채용 장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셔도 큰 배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