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연봉을 누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
평가 시즌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평가 운영이 큰 무리 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보상에 대한 세부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조직의 성과를 나누는 문제.
그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연봉’이다.
그날 논의의 핵심은 단순했다.
“연봉 정보를 누가,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내가 상사를 보는 시선을 바꾸고,
HR의 정보와 신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 될 줄은
그때는 아직 몰랐다.
평가·보상 업무를 위해 함께 움직이는 두 명의 핵심 역할이 있었다.
payroll 담당자: 급여·연봉 데이터를 직접 다루는 담당자
평가 담당자: 평가 제도를 기획·운영하며 리더와 구성원을 연결하는 담당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평가와 보상은 세트다. 둘을 떼어놓으면 메시지가 엉킨다.”
그래서 제안했다.
두 담당자 모두 연봉 정보를 알고, 제도를 고민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하자고.
내가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전체적인 방향성을 잡으면,
평가 담당자와 payroll 담당자가 각각의 역할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고.
내 머릿속 그림은 분명했다.
평가 담당자는,
“평가 결과가 어떤 보상으로 이어지는지”를 알고 있어야
평가 제도 운영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payroll 담당자는,
회사가 어떤 기준과 철학으로 평가·보상을 연결하려 하는지 이해해야
그에 맞춰 데이터를 정리하고, 실제 급여로 이어지는 오퍼레이션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런데 상사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연봉 정보는 payroll 담당자만 알고 있으면 좋겠어요.
평가 담당자에게는 팀장님과 payroll 담당자가 분석한 정보를 제공하면 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뚝’ 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입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 상사가 HR 전문가는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날만큼은,
“정말로 HRM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과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상사가 한 말의 핵심은 이거였다.
“같은 조직 내 다른 구성원들의 연봉 정보는 평가담당자가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단순했다.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와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평가만 바라보는 평가담당자”라는 말이
이미 그 역할의 한계를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평가 담당자가 평가만 바라봐야 한다면, 그 담당자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평가와 보상은 세트다.
둘을 연결해서 봐야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내 안에서는 이런 문장들이 계속 떠다녔다.
평소 내 상사는
“정보는 필요한 사람에게 잘 흐르는 게 중요하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정보 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이
왜 여기서는 이렇게까지 꽉 틀어막으려 할까?”
상사의 개인적인 이유든, 공적인 이유든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HR은 정보를 독점하는 조직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리스크와 효율을 함께 고려해
‘정보 흐름의 기준’을 설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평가담당자가 연봉 정보를 모르면,
평가와 보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고
자신의 운영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감하기 어렵고
결국 “평가 오퍼레이터”로만 남게 된다.
반대로 payroll 담당자가 평가와 보상의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면,
숫자는 잘 다루더라도
무엇을 분석해야 조직에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감을 잡기 어렵다.
이 둘은 역할이 다르지만,
적어도 같은 ‘지도’를 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황은 솔직히 이랬다.
HR에는 일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팀원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보 공유와 권한 위임이 절실했다.
“이 일을 맡기려면,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정보를 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사는 끝까지
효율성보다는 ‘정보 통제’에 무게를 두었다.
입사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내가
회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상사에게는 나만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걸까,
나름대로 스스로를 설득해보기도 했다.
결국 그 해에는,
평가담당자에게 핵심 정보를 충분히 위임하지 못했고
그는 평가 관련 오퍼레이션만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중간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느라 소진되었다.
한편, (이와중에 감사하게도) payroll 담당자는
연봉 정보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는 법을 고민했고
연봉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HR 데이터가 왜 정리되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데이터를 쌓아야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분명 팀으로서도, 그 담당자에게도 성장의 기회였다.
그래서 이 경험은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적절한 정보 공개 범위와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직무 만족, 전문성, 협업 수준이 확연히 달라진다.”
정보를 막으면 단기적으로는 안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역할 확장 가능성이 줄어들고
팀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리더 혼자 모든 것을 떠안게 된다.
시간이 조금 흘러,
나의 직속 상사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HR만 20년을 경험하신 분이었다.
새 상사는 들어오자마자
그동안의 연봉 정보 공개 범위와 구조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왜 이렇게 운영했어요?
히스토리 좀 들려주실래요?”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평가담당자와 payroll 담당자의 정보 접근 범위
상사와의 의견 차이
위임하지 못했던 일들
그럼에도 어떻게든 깨지지 않게 버텨보려 했던 과정까지.
다 듣고 난 뒤,
새 상사가 한 마디를 건넸다.
“일하기 힘드셨겠어요.”
그 한 마디가,
이상하게도 크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내 판단이 100% 옳았다는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틀린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확인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찜찜함과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경험을 지나고 나서,
나는 “연봉 정보를 누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이제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정보 보호,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보호의 목적이 “두려움”과 “통제”에만 머물면
성장의 기회를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정보 공개도 무조건 넓다고 좋은 게 아니다.
대신 “어떤 역할에게, 어떤 책임과 함께, 어느 수준까지 열 것인가”를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HR은
이 양극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부서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 흐름의 기준’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연봉을 누가 어디까지 아는 게 맞는지에 대한
정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이런 질문만큼은 계속 붙들고 가고 싶다.
“이 정보 구조는
우리 팀과 조직이 더 전문적으로,
더 건강하게 협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
“누구를 믿지 못해서 닫고 있는가,
누구를 믿고 함께 보기 위해 열고 있는가?”
사람과 조직 사이에서 HR이 세우는 기준은,
결국 이런 질문들 위에 서야 한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성장기 조직에서 HR팀을 만들어 간다는 것의 의미를
좌충우돌 장면들을 중심으로 이어서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