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빌리지
부푼 기대를 안고 찾은 제주 여행, 아쉽게도 하늘이 뚫린 듯 비가 퍼붓는 날이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싱그러운 초록빛 산 대신 온통 검은빛 세상 앞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발견한 곳은 '점보빌리지'의 코끼리 쇼 관람이었습니다. 태국도 아닌 제주에서 코끼리라니, 꽤나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시아 코끼리 여섯 마리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큰 몸집,엉덩이를 씰룩이며, 팔랑거리는 귀를 가진 이 귀요미들은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사육사의 지시에 따라 제법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코로 예쁜 그림까지 그려내며 바나나 간식을 바라는 듯 코를 흔들었습니다.
무슨 코끼리 쇼냐며 투덜대던 남편과, 늘 불만이 가득했던 사춘기 아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만개했습니다. 평소 귀엽고 작은 것을 좋아하는 저의 취향이 바뀔 정도로, 이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코끼리들은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문득, '너희들은 어느 나라에서 언제 제주도까지 온 것이니? 어떻게 잡혀 이 이국땅까지 와서 재주를 보여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30분 남짓한 쇼를 보며 날씨 때문에 우울했던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준 고마움과, 자유로운 서식지를 떠나 우리에 갇혀 사육되는 것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안쓰러움. 이 양가감정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궂은 날씨 속에서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준 이 귀여운 코끼리들이 부디 착한 사육사들 틈에서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오늘 밤은 아기 코끼리 덤보 꿈이라도 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