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싸준 김밥
"엄마, 김밥에 당근은 넣지 마! 시금치도."
"김밥에 당근 빼고 시금치 빼면 뭘로 속을 채우라는 거냐!"
김밥 속을 채우는 것으로 부엌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일은 막내 소풍날, 엄마는 아이가 먹을 김밥 한 줄에 들어갈 야채와 고기를 부엌에서 준비했다.
한 줄만 싸면 되는데도, 다라이에는 우엉, 시금치, 당근이 가득했고, 간장과 설탕을 가득 넣은 단짠한 불고기까지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밥을 해야 되니 일찍 일어나야겠네. 찬밥으로 싸면 맛없다. 계란은 아침에 부쳐야지."
누가 보면 내일은 동네 잔칫날인 것처럼 부엌에는 각종 양념 (소주병에 넣은 참기름, 손잡이가 있는 커다란 해표 식용유, 노란봉지의 맛소금 등) 과 식재료가 나와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김밥은 계란물에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 넣은 계란말이가 크게 들어 있었다. 안 먹는 당근이나 부추, 파 같은 것을 잘게 썰어 넣은 것 같았다. 햄 대신 단짠한 불고기와 우엉조림, 마늘과 진간장, 참기름으로 무친 시금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생마늘 향과 물컹한 식감 때문에 시금치를 젓가락으로 몰래 빼서 버리곤 했다.
소풍날, 도시락 뚜껑을 열어 친구들과 서로 다른 맛의 김밥을 나눠 먹어보았다. 그때는 서로 맛과 모양이 다른 김밥 맛에 평가를 해보기도 했다.
엄마의 김밥이 가장 뚱뚱하고, 크고,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친구들이 웃었다.
"너의 엄마는 넘쳐나는 사랑으로 김밥을 싸주시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햄이나 오뎅을 넣은 친구의 김밥보다는 단연코 맛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친구도 우리 집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한번 소풍을 가게 되면 큰손 이 여사님께서는 그날 저녁도 다음 날 아침도 김밥을 주셨다. 소풍 전날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밥상머리에서 반찬투정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사랑은 이제 그만! 여사님 김밥도 이제 그만!"
어느 날인가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김밥을 싸서 엄마에게 가져간 적이 있었다. 먹어보시더니 "밥이 너무 되다. 참기름을 더 넣어야지" 하시며, "우엉이랑 시금치가 없으면 맛이 안 나!" 지적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왜 이걸 가져갔을까 후회를 했다.
사실 이 여사님은 장금이를 능가할 혀를 가지셨다. 그래서 웬만한 식당 음식을 싫어하시고 손수 만든 게 가장 맛있다 여기시는 까탈스러운 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을 거 같다.
엄마가 말하는 김밥의 필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 밥을 잘 짓는 것 : 되지도 질지도 않게 밥물을 잘 맞추는 것이었다. 시판 김밥집 밥보다는 밥이 부드러웠다. 사실 레시피가 없는 그 밥맛을 재현하는 것은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 짭짤한 간 : 밥과 모든 속 재료가 다 짭짤하게 간을 해야 했다. 그래서 김밥이 나트륨 덩어리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고소한 참기름의 맛 : 항상 시장 방앗간에서 눈으로 보고 참기름을 짜서 가져오셨으니 참기름은 최상급이었을 것이다.
세 가지를 유념하고도 우엉조림과 마늘 향 가득한 시금치가 들어가야 그 맛이 났다. 요즘 파는 간편한 시판 우엉조림이 아니라, 직접 사서 칼로 긁어서 다듬고 잘게 썬 향이 가득한 우엉조림이었다. 엄마김밥의 특유의 향은 시금치무침의 마늘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그 향이 감각적으로 기억이난다.
*김선생*, *방배김밥*, *오토김밥* 여기저기 맛있는 김밥이 많은데도 왜 엄마가 만든 그 김밥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안 계시니 그 김밥은 내가 재현을 한다. 어설프게 그 맛을 기억하며 만들어보았다. 야채를 손질하고 불고기까지 만들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다진 파를 넣은 계란말이를 크게 만들어 넣고 야채도 듬뿍듬뿍 옆구리가 터질만큼 뚱뚱하게 그렇게 김밥에 온갖 사랑을 담으신 엄마를 기억하며 김밥을 싼다. 시장방아간에서 산 고소한 참기름을 듬뿍 바른다. 그렇게 추억이 깃든 나의 소울푸드가 완성되었다.
큼직하게 썬 김밥을 집으니 툭 터져 김밥 속 재료가 흐트러졌다. 젓가락으로 꼬옥 집어 입에 넣고 떨어진 노란 단무지까지 먹자 그리운 기억에 목이 메인다. 코끝이 찡긋 시린다. 이럴때 엄마는 멸치와 다시마를 가득넣어 우린 진한 국물을 주셨지! 내일은 국멸치 사러 시장에 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