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와 조선의 소설들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린 램지 감독, 2012년 개봉.)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져 온 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로운 여행가 에바가 토마토 축제를 한껏 즐긴 결과 얻게 된 케빈, 누군가에겐 축복일 아이가 에바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낯설다.
원하지도 준비되지도 않았던 임신과 출산, 이전의 삶과 180도 달라진 도심 외곽 주부의 삶, 도무지 손에 익지도 좋아할 수도 없는 육아, 그럭저럭 괜찮지만 에바의 어려움에는 피상적인 남편, 게다가 악의를 품은 것만 같은 까다로운 아이(difficult baby). 엄마가 된 에바에게 ‘엄마 되기’는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케빈이 저지른 만행(케빈은 16세 생일날 아빠와 동생, 같은 학교 학생들을 학살한다.)이 결여된 모성의 대가라고만 하기엔, 아이와 부모에 대한 이해로 충분치 않다. 제목처럼 우리는 ‘케빈’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모성에 대해 얘기할 때면 곧잘 전통적 어머니상이 소환되곤 한다. 마치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자애롭고 헌신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모성이 지닌 숭고함이 분명 존재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든 어머니가 훌륭한 모성을 지닌 것은 아니며 모든 모성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예부터 모성은 가부장제와 결부돼 의미화된 경향이 강한데, 조선시대에는 가부장제를 위협하거나 가장의 뜻에 부합하지 않은 모성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창선감의록>과 같은 소설에서, 가장의 뜻에 반해 사랑하는 아들에게 가문의 장자권을 물려주려 쟁투하는 어머니는 악인으로 형상화되고 그 모성은 나쁜 것으로 다뤄진다.
한편 모성을 방기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고전소설도 있다. 18세기 향유된 <명주기봉>, <옥원재합기연>의 여성인물들은 원치 않은 잠자리와 임신을 하게 되고 그렇게 출산한 아이에게 선뜻 정을 붙이지 못한다.
<명주기봉>의 화옥수는 평소 친정아버지를 소인이라 여기며 무례하게 대하는 남편 현흥린과 오랜 기간 갈등한다. 화옥수의 부친은 황제 사촌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비루하고 잔인무도한 행실을 서슴지 않는다. 현흥린은 부모 뜻에 따라 화옥수와 혼인하지만 장인의 인물됨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내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공연히 박대한다. 나중에야 화옥수가 그 아비와 달리 성품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랑하지만 처가를 혐오하는 태도는 바꾸지 않는다. 효심 깊은 딸인 화옥수는 아버지 행실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아버지를 노골적으로 멸시하며 급기야 아버지 비행을 직접 고발하기까지 하는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부갈등이 수년간 이어지고 온전한 화해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강압적인 잠자리로 임신하게 된다.
화옥수는 임신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다. 출산 후에도 아이 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아들 곁에 가지 않는다. 현흥린 역시 아내와 냉전 중이라 아이를 냉대한다. 태어나서부터 부모에게 외면받은 아이 희몽은 다행히 조부모와 숙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크는데,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배우면서 엄마 아빠가 자신을 멀리하는 사실을 자각한다.
현흥린이 모친 침전에 이르니, 희몽이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할머니 앞에서 놀다가 돌아보고 빨리 걸어가 아버지 관복 자락 잡고 안기고자 하되, 흥린이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 모친 모셔 앉으니, 아이 가장 서운하고 부끄러워 기색이 울 듯하거늘 모친이 지긋이 보다가 길이 탄식하고, (…)
숙부가 웃으며 묻기를 “네 어머니는 너를 어찌 여기더냐?” 희몽이 답하되, “유모가 안겨드리면 꾸짖으시되, ‘기다리지 않은 것이 생겨 한층 욕을 더하니 귀하지 않은지라, 빨리 앗으라.’ 하고 한 번도 안아주시지 아니하더이다.”
<명주기봉> 24권
현흥린 화옥수 부부가 아들 희몽을 어떻게 방치하는지 아이 시선에서 잘 포착되고 있다.
<옥원재합기연>의 남녀 주인공, 소세경과 이현영의 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지난한 양상을 띤다. 그들 관계는 부친 대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부친은 죽마고우로 각각 아들, 딸을 낳자 장차 혼인을 시키자고 약속한다. 수년이 흐른 뒤 강직한 소세경의 부친이 간신의 공격으로 정치적 몰락을 겪자 세속 이익에 밝은 이현영의 부친은 간신 편에 서며 친구를 배반하고 딸의 정혼도 깨뜨린다. 가문 몰락 후 생존을 위해 여장으로 유랑하던 세경은 우연히 원수 가문에 여종으로 잠입해 이현영과 그 부모의 일상을 속속들이 보게 되고, 부친의 신의 없는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던 현영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재회하고, 유배 중이던 소세경 부친의 주도 아래 혼례를 이루지만, 처가를 원수로 여기는 세경과, 그가 여장했을 때부터 자신과 자신의 부모를 모독해 온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현영은 결혼 후 오래도록 갈등한다.
이현영의 내면은 복잡했다. 부친이 시가에 저지른 행태에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효심은 깊어 가출 후 소식 끊긴 친정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게다가 부친의 배신을 용서한 자애로운 시아버지와 달리 여전히 친정 부모를 원수로 여기며 멸시하는 남편 소세경의 태도에 우울감이 깊어져 갔다. 친정으로 인한 부부갈등이 격화될 때면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깊은 우울감에 빠져 아이를 돌볼 수조차 없었다.
소세경 내당에 들어가 보니 부인(이현영) 상 위에 엎드려 살아있는 사람 모양이 아니요, 두 아이 곁에 있어 아들 봉희는 죽그릇을 받들어 권하고, 딸 난주는 소리높이 울며 젖을 구하되 현영이 돌아보지 않거늘 (…)
<옥원재합기연> 9권
이현영의 우울감은 심각한 수준이어서 자살사고에 시달리고, 그런 심경을 아이에게까지 내뱉기도 한다. 부친이 또 무도한 일을 저질렀다는 소식에 심적 고통이 심해져 부모 죄를 대신해 굶어 죽겠다 결심하고 아들 봉희에게, “네 어미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알지어다. 네 아버지 돌아오시기 전에 죽어 면목 아니 뵈기를 바라노라.”라고 했던 것이다.
이현영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모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의 병이 깊어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힘에 부쳐서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인생이 고단해도 아이 하나 보고 산다는 숱한 어머니들의 모성이 현영에게는 결여된 듯 보인다.
그런데 화옥수나 이현영의 모습은 작품에서 일방적으로 비난당하지 않는다. 물론 시가 식구들이 그들의 과도한 행태를 말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겪는 외적, 내적 갈등을 이해하며 보듬는다. 시부모들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부부갈등에서 비롯된 일이며, 그 갈등의 원인이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친정 부모 일로 마음 불편할 며느리들을 위로하고, 처가에 무례히 굴며 공연히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아들들의 행태를 엄히 꾸짖는다. 특히 심적 고통이 심해 자살사고가 잦았던 이현영에게 시아버지는 생의 의지를 일깨워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의지처였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중시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모성이 결여된 여주인공의 등장, 그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관점은 소중하다. <명주기봉>, <옥원재합기연>과 같은 소설은 모성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당대 여성의 삶과 내면을 여성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어 여러모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참고자료
『명주기봉』 (장서각 소장본 24권 24책)
『옥원재합기연』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21권 21책)
이지하, 「여성주체적 소설과 모성이데올로기」,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6,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4
커버이미지: 영화 '케빈에 대하여'(린 랜지 감독, 2012)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