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 여정
제주도는 신들의 섬이요, 신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신화의 고장이다. 창세신화부터 각 마을에 관련된 당신화, 상방, 부엌, 화장실 등 집안 곳곳에 얽힌 신들의 이야기까지, 손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신화가 전승된다.
그 가운데 <원천강본풀이>라는 신화가 있다.(같은 제명의 신화가 전혀 다른 내용의 두 버전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박봉춘본 <원천강본풀이>’를 살펴보려 한다.) 이 신화는 독립된 제의를 확보하지 못해 현재 굿으로 실연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이’라는 제목의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작되어 대중에게 꽤 알려져 있다. 신화의 주인공 '오늘이' 이야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문제들이 노정되어 있다.
태어난 날, 부모, 이름 등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던 한 소녀가 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오늘을 낳은 날로 하여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라”며 ‘오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아를 찾고 싶은 오늘이는 백씨부인에게 자신의 부모가 ‘원천강’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떠난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길에서 차례로 장상이, 연꽃, 이무기, 매일이, 선녀를 만나고, 그들에게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묻는 한편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얻어달라 부탁받는다. 그리고 드디어 원천강에 도착해 부모를 만나고, 삶의 원리를 깨달아 여행길에 만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는 심방(제주도에서 무속적 사제, 무당을 이르는 말)이 된다.
오늘이의 삶은 원천강에 다녀옴으로써 전변한다. 그런데 원천강은 지상의 공간이 아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모두 모인 장소로, 오늘이 부모는 옥황상제 명으로 이곳에서 사계절을 관리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원천강은 ‘일정한 주기가 반복됨으로써 재순환(recycle)하는 세계’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장소를 경험하는 것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 우주의 이치를 터득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규칙적인 반복이 예측을 가능케 한다고 전제하는 ‘점복’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제목의 ‘원천강’ 역시 중국의 명리학자인 ‘원천강’ 혹은 그가 지은 『원천강오성삼명지남(袁天綱五星三命指南)』이라는 책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명리서로 위상이 높았는데, 당시 ‘원천강’이란 이름이 점술서 혹은 점쟁이 대명사로 쓰이며 제주도 본풀이 제목에까지 오르게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오늘이는 원천강에서 부모를 만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성장하고, 춘하추동 사계의 이치, 우주의 원리를 배워 여행길에 만난 이들의 번뇌에 대한 답도 얻게 된다. 그곳은 오늘이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공간으로, 오늘이가 자아를 탐색하는 곳이자 심방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천강을 다녀오기 전과 후의 오늘이는 연속되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원천강 여행은 오늘이에게 심방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그것 자체로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가 된다. 그런데 그것은 오늘이 개인의 성장 드라마로 그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구복여행담’ 즉, ‘복을 구하러 가는 길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부탁받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자신도 복을 얻는 이야기’의 구조를 띠고 있다. 원천강은 지상 세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선계(仙界)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계로의 여정을 떠나는 오늘이는 그 길에서 만난 인간계 존재들의 문제들까지 짊어지고, 선계의 요소를 취한 뒤 지상의 문제들을 해결한다.
이때 내부의 결함은 외부자에 의해 해소된다. 오늘이가 원천강을 찾아가는 길 막바지에 만난 선녀들은 천상계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구멍 난 바가지 때문에 물을 긷지 못하는데, 지상의 존재 오늘이가 구멍을 막고 물을 긷자 순식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선녀의 입장에서 외부(지상계)의 존재가 내부(선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리고 원천강이라는 이계를 경험해 더 이상 지상의 존재가 아니게 된 오늘이가, 다시 외부자로서 지상의 문제들을 해결한다.
이렇게 지상과 선계, 지상의 존재와 선계의 존재는 상보적 관계를 형성한다. 각자의 세계는 당면한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데, 오늘이를 매개로 하여 외부의 요소로 내부적 문제들을 치유한다. 서로 다른 세계는 서로 도와야 존속할 수 있으며 두 세계의 유대는 필연적이다. 이때 상대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될 수밖에 없다. 외부가 없는 내부는 있을 수 없고 내부가 없는 외부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보적 관계란, 자아의 존립은 타자의 존재 하에 성립된다는 관계 중심의 사유를 토대로, 서로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서로 결핍된 부분을 보완하며 상생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선계에 몸담았던 오늘이는 지상에 돌아와 장상이, 연꽃, 이무기, 매일이를 차례차례 다시 만나 신탁을 들려준다. 매일 반복해서 책만 읽는 삶이 고민이었던 장상이와 매일이는 둘이 혼인하는 것으로 고민을 해결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연대하는 삶이 결여되었던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음으로써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
다음으로 구슬을 세 개나 물고 있으면서도 용이 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던 이무기는 두 개의 구슬을 버리고 하나만 물어야 한다는 답을 얻고, 윗가지에만 꽃이 피는 것이 고민이었던 연꽃은 윗가지 꽃을 꺾어야 다른 가지에도 꽃이 핀다는 해답을 얻는다. 이무기와 연꽃은 모두 지나친 욕심 때문에 더 큰 일을 이루지 못한 존재들로, 이들에게는 욕심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결핍으로 작용했기에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되었다. 가득 찬 것이 곧 결핍이고 그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로, 우리가 진정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이치이기도하다.
한편 비워야 채워진다는 논리는 나눔과도 이어진다. 이무기가 내놓은 두 개의 구슬로 오늘이는 백씨부인에게 은혜를 갚고 심방이 된다. 비움은 동시에 채움이 되고, 또 다른 이를 향한 배려와 양보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결핍을, 비움으로써 채우는 것은 당사자와 주변을 동시에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된다.
기실 오늘이의 여정은 처음부터 상보적 관계를 전제하고 있었다. 원천강을 찾아가는 오늘이에게 매일이, 이무기, 연꽃, 장상이, 선녀는 길을 가르쳐 주었고, 오늘이는 이들의 번뇌를 해결해 주었다. <원천강본풀이>는 오늘이의 성장 스토리일 뿐 아니라, 무언가 결핍될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힘을 보태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한층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각자도생을 외치는 세상이다. 완전하지 않은 우리들은 우주의 관계망 속에서 서로의 결핍을 나누고 채우며 살아갈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질진대, 오늘날의 우리는 호구가 되지 말되 민폐도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갇혀, 단절과 고립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가는 각자의 결핍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이의 여정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참고자료
고은임, 「원천강본풀이 연구-‘오늘이’ 여정의 의미와 신화적 사유」, 『관악어문연구』 35, 서울대 국문과, 2010
김혜정, 「제주도 특수본풀이 원천강본풀이 연구-신명에 대한 재고를 중심으로」, 『한국무속학』 제20집, 한국무속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