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전소설 스핀오프의 세계 1

<소현성록> 연작의 스핀오프 <영이록>

by 고은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포스터/ tvN 공식홈페이지

오리지널에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을 일컫는 스핀오프(spin-off)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인다. <아이언맨>, <토르>, <스파이더맨>, <어벤저스> 등 ‘마블 시리즈’ 영화가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tvN에서 방영되고 있다.


조선의 소설 가운데도 스핀오프 작품들이 존재한다. 오리지널 작품의 인물이나 사건 등 일부를 차용해 별도의 작품으로 창작된 소설들이 있는 것이다. 꽤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영이록>이란 소설을 소개하려 한다. <영이록>은 <소현성록>‧<소씨삼대록> 연작 소설의 스핀오프로, <소씨삼대록> 주인공 소운성이 손윗동서 손기를 얕잡아보고 희롱한 삽화에서 비롯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제적 남자의 등장-<소현성록>의 소운성’(https://brunch.co.kr/@f0d27b56d3a6474/16)에서 살폈듯이 소운성은 출중한 외모와 비범한 능력을 지닌 희대의 영웅이지만 오만방자하여 때때로 주변 사람에게 제멋대로 구는 인물이기도 하다. ‘문제적 남자의 등장-<소현성록>의 소운성’에서는 그가 여성과 맺는 관계에서의 문제적 면모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많고 다양하다.


그 가운데 손윗동서 손기와의 관계도 문제적이다. 소운성 아내 형강아의 언니가 손기와 혼인하는데, 손기는 내성적이고 아둔한 인물로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했다. 특히 수려한 외모에 영웅적 자질을 타고난 소운성을 피해 다녔다. 소운성은 혼인을 해서도 손윗동서에 대한 소문만 듣고 만나보지 못해 호기심을 느끼던 차, 장인과 처남들이 자신을 나무라며 손기를 칭찬하는 말을 하자 더욱 궁금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처가 식구들이 뱃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러 자신은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자신을 피해 다니던 손기가 그 자리에 참여하게 해 놓고선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날 계획을 세운다.


이때 손생(손기)이 잔치에 참여하여 즐기고 있었는데 시동(侍童)이 급히 보고하여 말하였다.
“소병부(소운성)가 한 필의 말로 달려오셔서 지금 들어오십니다.”
손생이 몹시 놀라 허둥지둥하며 바삐 피할 곳을 찾았지만 한없이 넓고 푸른 강물 가운데서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다만 한 구석에 부딪쳐서 서 있었는데 잠시 후 운성이 비단 도포에 옥으로 장식한 띠를 두르고 사모(紗帽)를 쓰고 왼쪽에는 병부(兵簿)를 차고 허리띠에 금인(金印)을 건 모습으로 천천히 들어와 먼저 형참정에게 인사를 마친 후 돌아서서 형한림 형제를 보고 기쁘게 안부를 나누고는 눈을 들어보았다. 형참정 뒤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귀신과 같은 괴이한 모습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 있었다. 운성은 이미 짐작하고 일부러 가리켜 말하였다.
“저는 어떤 사람인가?”
<소현성록> 9권


갑작스러운 소운성의 등장에 손기는 당황하며 숨기에 바빴다. 수려한 외모와 멋진 치레의 소운성에 비해 추레한 차림에 어찌할 바 몰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손기의 모습에, 그들의 장인 형참정은 “마음속으로 ‘천도(天道)가 고르지 않는 것은 이와 같구나. 나의 두 딸은 별 차이가 없지만 그 남편의 선악은 이렇듯 현격하게 다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고” 새삼 한스러워한다.


손기의 어리숙한 모습에 소운성은 쉴 새 없이 그를 희롱하기 시작한다. 겁에 질려 자신의 이름을 “송기”라 잘못 말하자 그 실수에 농을 더하고,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는 모습에는 출가해서 참선을 하느냐며 놀린다. 시 짓기 경쟁을 하자며 가장 지체하는 사람은 벌칙으로 강물 열 그릇을 마시자 제안하더니, 손기가 시를 못 짓자 기어코 강물 열 그릇을 떠 오게 해 손기에게 마시라 조롱한다.


그러자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손기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런데도 운성은 조롱을 그치지 않고, “천지의 조화가 손생에게 치우쳐서 모두 평범한 사람보다 특출하구나. 소리는 미친개와 같고, 용모는 굶주린 말 같으며, 풍채는 잎 떨어진 나무 같고, 재주는 남의 글 도적하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에는 거짓말을 잘하니 과연 영웅이라. 저렇거든 장인이 칭찬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며 크게 웃어 손기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장인에게 “(…) 평소에 손생을 매우 칭찬하시기에 소문을 높이 듣고 보고자 한 것입니다만 (직접 보니) 몹시 낮아 보입니다.”라 말하고 자리를 떠난다.


<소씨삼대록>에 등장한 손기는 이렇게 비루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소운성의 출중한 외모와 능력, 오만하고 호방한 성격을 드러내주는 기능의 역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 손기가 <영이록>에서는 무려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운성을 뛰어넘는 능력과 인품을 지닌 인물로 성장하여 그의 무례함을 되갚고 나아가 그의 은인으로 활약한다. 손기와 소운성이 대면하는 <소씨삼대록>의 삽화를 <영이록>도 공유하지만, 손기의 관점과 입장에서 서사가 진행되고 그 후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는 뒷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이록>은 인간과 삶에 대해 원작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다음 편에 계속..)



*참고자료

조혜란 외 역, 『소현성록』 1-4, 소명출판, 2010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