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던,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갔고, 아빠는 일을 나가시고, 엄마는 볼일 보러 나가셨다.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로 나왔다. 고요한 상태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빨래를 널고 있는데 생뚱맞게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구나!'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구나. 그저 스치듯 지나갈 평범한 순간이지만, 그 찰나의 행복을 느끼니 엉엉 눈물이 났다. 그와 공간이 분리되어 떨어져 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느낄 수 있다니. 너무 행복했다. 여전히 엄마의 눈치가 보이는 친정살이에 재정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일 이후로도 아주 작고 평범한 순간에 종종 눈물이 나곤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감사해서.
친정에 온 지 2년 정도가 되어가니, 엄마와의 냉전은 조금 잦아들었다. 나에게 변했다고 말하며 나를 탓하던 엄마는 조금 부드러워지셨다. 나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혼도, 재혼도 반대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엄마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었는데... 엄마는 언제쯤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줄까?
결혼 후 다녔던 교회 주일예배는 코로나와 거리의 영향으로 대부분 온라인 예배로 드렸다.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면 왕복 4시간 정도로 걸렸기에 가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담임목사님과 아이 키우는 엄마들끼리 새벽 6시 반에 모여 줌으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찾다 보니 그 시간이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그때 어떻게 끝까지 했을까 싶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통해 힘든 시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출석하는 교회가 너무 멀어, 교회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이 챙겨주시고 챙겨주셨던 것을 알기에 '서운해하시면 어쩌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목사님이 예배도 대면으로 드리고 아이 교회친구도 만들고 하려면 집 근처로 교회를 옮기는 게 낫지 않냐며 교회를 옮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 타이밍이 누가 계획이라도 한 듯 신기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목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 근처 건강한 교회를 찾기 위해 탐방을 시작했다. 먼저 인터넷으로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교회인지 알아본 후 세 교회를 추렸다. 말씀이 건강하고 나도 좋고 아이도 좋아하는 곳으로 정하기로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 교회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였고, 주일예배를 드려보았는데 나쁘지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아이는 좋아했다. 교회 안에 작은 미니 놀이터가 있었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도 그곳에서 놀기 바빴다.
두 번째 교회는 부모님이 다니고 계시고, 나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녔던 교회이다. 그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아는 사람들이 있어 적응하는데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담임목사직이 세습되었고(투표로 뽑히긴 했지만) 내 가치관으로는 그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엄마와의 문제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교회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지만, 내가 그 교회에 다니게 되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과 사람들이 익숙하지만 나의 상황 때문에 불편했다.
세 번째 교회는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였다. 교회를 알아보던 초기에는 후보에 없던 교회였는데, 전에 함께 일하던 팀장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 교회의 유치부 전도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았고 가정의 아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분이었다며, 한 번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첫 주는 아이를 데리고 유치부 예배를 같이 드렸고, 그 교회로 오게 된 이유와 나의 상황을 설명드리자 전도사님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그다음 주에는 아이를 유치부에 맡기고 주일예배를 따로 드렸다. 말씀이 성경적이고 목사님의 겸손한 모습이 좋았다. 주일예배를 몇 번 더 드렸는데 설교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이 상한 나를 위로하시는 느낌이었다. 아이도 유치부 예배를 좋아했기에 그 교회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이 교회 가기로 했다고 하니 엄마는 엄마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이 내가 그 교회 다니는 거 보면 어떻게 하냐고 다른 교회 가보라고 했다.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엄마는 내가 부끄러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나는 살려고 나온 건데.' 엄마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더 중요한 것 같아서 슬펐다. 내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니고 있던 교회 목사님께 옮길 교회를 정했다고 말씀드리니, 어디냐며 괜찮은 교회인지 확인해주시기도 했다. 교회를 옮기더라도 정식으로 인사는 하고 가라고 하셔서 그날을 정하고 아침 일찍부터 아이를 챙겨 교회로 출발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벌써 7살이 되었다. 힘든 결혼생활을 하며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던 곳이라 그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받은 사랑을 잘 나누며 살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눈물이 날까 봐 꾹 참았었는데 예배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이들과의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게 어찌나 슬프던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만나게 하셨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