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아이와 아이아빠와 함께 롯데월드 갔다. 아이가 함께 가고 싶어 했고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어 같이 갔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아픈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이 쭉 빠져있었다. 일부러 살을 뺐다고 하는데 아픈 데가 있어서 살이 빠진 사람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그는 일하는 곳에서 밥을 한번 먹고 집에서는 밥을 아예 안 먹는다고 했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서 밥 먹기가 싫어서."
집에서 밥을 안 먹으니 식재료도 안 사서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으니 가스불을 쓸 일이 없어서 도시가스도 전화해서 끊고 겨울에도 차가운 물로 씻고….
'왜 저렇게 할까?'
결혼 전, 회사에서 자신을 혹사시키며 일하는 그를 봤을 때 들었던 생각, '왜 저렇게 살까?'와 비슷한 생각을 또 하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자기 검열, 자기비판이 심한 편이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해 알게 된 후, 나 스스로를 토닥이며 “괜찮아. 정말 수고가 많았어.”라고 말하기도 하며 나에게 친절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아빠가 스스로의 잘못을 용납하고, 다독이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는 공황장애 이후에 약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언제 갑자기 공황증상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약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사람들 많은 곳에 못 간다고 했는데 놀이동산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 내가 친정으로 간 후 그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불안과 우울이 높은 상태에서 술은 공황장애의 트리거역할을 한 것 같다.
주말이라 놀이기구를 타려면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다 용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이 너무 과거에 묶여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정말 잘 되길 바라고 당신의 삶을 응원해. 이제 부부로서는 아니지만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아이에게 부모로서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어야 아이가 힘들 때 부모에게 기댈 수도 있어. 그런데 부모가 휘청이고 있으면 아이가 기댈 수가 없어.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말의 속뜻은 ‘당신은 한 아이의 아빠니까 힘들어도 죽지 말고 살아.’였다.
그가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불안해? 아이가 있는데 안 죽지.”
황당하면서도 반가운 대답이었다.
‘그럼 그동안 자살협박부터 연락두절까지, 사람 불안하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본인이 불안하냐고 물어보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서먹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는 놀이기구, 아빠가 사주는 선물들, 맛있는 밥과 간식과 함께한 하루가 즐거웠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되었지! 내 마음이 좀 불편한 게 대수냐!’
그의 공황 이후에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혼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멈춰보기로 했다. 일단 사람이 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이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아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달에 한번 정도 그를 아이와 함께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빠를 오랜만에 봐서 어색해했지만 아빠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불편했지만, 남처럼 서로 거리를 두고 만나니 나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만나는 일이 반복이 되니 엄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재결합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충격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내가 그동안 한 말들은 안 믿었던 건가?'
사람인지라 재결합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와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가정폭력이 있었음에도 아이와 함께 그를 볼 수 있었던 건,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아이가 함께 보기를 원했다. 함께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과 좋은 상태일 때 밖에서 만나서 즐거운 경험만 하고 헤어지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느끼는 喜怒哀樂(희로애락) 중 그와 怒(노)를 겪어낼 자신이 없다. 혹시나 그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1%의 만약'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았고, 그를 다시 선택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나의 행복을 그의 어떠함에 두고 싶지 않다. 혹시나 그도 오해할까 싶어서 재결합에 생각이 없음을 전했다.
한 번은 일산에서 있었던 불꽃축제를 보러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여러 공연과 드론쇼와 불꽃놀이를 보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렌터카를 타서 차례대로 차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방향으로 차가 나오는 길이 2군데였다. 우리가 탄 차가 있는 길에서는 차가 못 나가고 있었는데 다른 길에서 나오는 차들은 계속 나가고 있었다. 차례대로 나가면 좋으련만 기다리는 시간이 꽤 지났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기다리는 건 괜찮았다. 다만 그가 그 기다림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의 변화를 알아채는 내가 싫었다.
‘저러다가 또 짜증내기 시작하는 거 아니야?’
싶은 마음에 조마조마해졌다.
괜히 신경 안 쓰는 척 뒷좌석에 함께 앉은 아이와 놀았다. 마침내 우리가 탄 차가 나갈 차례였는데 다른 방향에서 나오는 차량이 밀고 나와 또 못 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차 창문을 내리더니 그 차 운전자를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상대와 험한 말을 주고받았다. 충분히 화가 날만한 상황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아이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게 최선이었을까.
내 심장은 불안으로 쿵쾅쿵쾅 뛰었다. 이제는 경험하지 았아서 좋았는데, 그 불안을 다시 느끼니 답답하고 상처받았던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이었다. 나의 상처가 나았나 싶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이니 여전히 두려웠다. 어른인 나도 그런데 아이는 어땠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그런 일 후에 그와 분리되어 지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좋았다.
아이와 함께 그를 만나면서 느낀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