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인가
아이는 어느덧 6살이 되었다.
5살에 친정으로 나왔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짜증은 많지만 비교적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6살이 되니 문제행동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면 나를 밀거나 주먹으로 치는 등 행동으로 표현을 했다. 그건 안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해도 잘 바뀌지 않았다. '아빠의 행동을 따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아빠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최악의 상황을 그려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답답하기도 하고 말로 하는데 안 들으니 참고, 참고, 참다가 감정이 폭발하듯 큰 소리로 화를 내게 되었다.
소리를 크게 지르면 아이는 책상 밑에 들어가 숨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큰 죄책감이 몰려온다. 그처럼 하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 우습게도 자꾸 깨졌다. 내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지만, 아이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까 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마음과 행동이 다른 데서 오는 괴리감에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에게 감정이 내려간 뒤에 "아까 큰 소리로 화내서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엄마가 어른으로서 잘못 행동했어."라고 사과는 했지만, 반복이 되는 상황에 마음이 괴로웠다.
유튜브로 찾아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며 적용도 해보고,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안 해주거나 화가 나면 나를 때리는 행동을 할 때 행동으로 훈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로 주의를 주었는데도 계속하면 팔다리 잡는 훈육을 했다. 아이와 말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화가 더 낫기에 감정적으로 화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고, 때리는 건 폭력이니 그건 안된다는 것을 몸으로라도 배우기를 바랐다. 마주 보는 자세였기에 나에게 침 뱉기도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단단한 머리로 내 가슴을 치기도 하고.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진정이 될 때까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버텼다.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그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훈육은 에너지 소모가 컸지만, 아이의 때리는 행동이 줄어들기는 했다. 여러 육아정보를 보고 적용을 해보기는 했지만 이 방법이 아이에게 맞는 건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이 상담을 받고 싶어도 비용을 생각하면 멈칫하게 되었다.
여름 장마철이 되었다. 유치원에서 하원을 하기 위해 나온 아이는 비옷에 장화까지 갖춰 입은 상태였다. 전에 장화만 신겼더니 다리에 물 다 튄다고 심한 짜증을 냈던 적이 있어서 오늘은 비옷까지 입혀 보냈었다. 장마기간이라 비가 세차게 내렸는데 아이는 짜증을 내며 한걸음 걷다가 자기 다리에 물 튀었다고 내 옷에 닦고, 한 걸음 가다가 내 옷에 다리에 묻은 빗물을 닦고… 이걸 집에 가는 내내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로 타이르다가 계속 반복이 되니 나도 화가 나서 아이에게 화를 냈다. 10분 거리를 30분 넘게 장맛비 속에서 보내야 했다. 서있으면 서있을수록 옷이 젖어서 빨리 들어가야 했는데 아이는 한 걸음도 안 떼고 짜증 내며 소리를 지르며 서있었다. 우산을 내려치기도 하고 내가 먼저 들어간다고 하면 붙잡아서 오도 가도 못하게 했다. 우산은 쓰고 있으나 비가 다 들이치니 옷이 젖을 수밖에 없었다. 장맛비가 더 세지면서 비가 계속 튀니 아이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짜증만 심해질 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억지로 안아서 집으로 데려왔다. 소리 지르며 저항하는 아이에게 화가 폭발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아이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이해되지 않는 아이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감정이 내려간 다음에는 죄책감이 찾아왔다. 그날 바로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싶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이의 심리치료를 위해 검색한 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미술치료센터에 연락을 하고 방문 날짜를 잡았다. 그림검사와 부모가 아이대신 체크하는 검사를 했는데 불안/우울이 높게 나왔다. 불안이 높을 거라고 예상은 했으나 우울은 좀 충격이었다. 설명을 들으니 불안과 우울을 같이 본다고 했다. 그로부터 미술치료 3개월 진행을 했으나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궁금한 걸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하지 않았다. 원장님, 선생님과도 잘 맞지 않았기에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치료보다는 놀이치료 하는 곳으로 알아봤다. 놀이치료 하려는 곳에서는 임상심리사가 없어서 미술치료 하던 곳에서 추가 비용을 내고 임상심리사의 소견서를 받아서 시기가 잘 맞아 아동청소년심리지원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선정이 되어 1회마다 자부담금 9천 원을 내고 지원을 받아 놀이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옮긴 곳의 치료사 선생님은 젊었고 아이를 대할 때 굉장히 밝은 에너지가 있었다. 궁금한 걸 물어봤을 때 이론과 함께 즉각적으로 잘 설명해 주셔서 좋았다. 아이는 몇 주 적응과정을 거치더니 놀이치료 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치료사님은 동적으로 아이와 잘 놀아주셨고 감각이 예민하니 감각통합도 병행하며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놀이 가운데 아이의 말, 행동을 통해 역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고민되는 부분을 전문가와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놀이치료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안에만 머물던 아이의 마음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놀이치료는 나에게 또 다른 숙제와도 같았다. 아이의 문제행동에 엄마에게 솔루션을 주고 한 주 동안 그렇게 적용해 보는 것. 그 과정들을 진행해 보며 느낀 것은 아이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의 반응이 달라지면 아이도 달라진다.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없이 부담되기도 했다. 아이의 문제가 내 탓인 것만 같아 부정하고 싶기도 했다. 한 주 반짝 시도해 볼 수는 있으나 꾸준히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내 마음속을 깊게 들어가 보면 화가 날만한 상황은 맞으나 너무 화가 나는 이유는 아이가 나의 상처를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짜증이 많았고 그 짜증은 조절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폭력이 있었기에 누가 내 몸을 건드리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그런 상황에서 분리될 수 있어 좋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조절되지 않는 짜증과 화가 나서 내 몸을 함부로 건드린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아이와 그는 다른 사람인데 자꾸 행동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놀이치료를 한지 일 년 정도 됐을 무렵, 아이 심리를 보기 위해 집, 나무, 사람 그리는 검사를 했다.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자기를 그리게 되는데 종이 크기에 비해서 사람의 크기가 좀 작긴 하지만 그림의 느낌도 중요한데 한 번에 그린기도 하고 괜찮다고 했다. 나무에 열매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어디에 두겠냐고 치료사님이 물어보니 집에다가 두겠다고 하는 걸 봐서 집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집은 창문이 많았는데 소통하고 싶어 하는데 안에서 안전한지 관찰한 후에 한다고. 아이의 그림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는 아이가 그림을 다 그린 뒤, 아빠와 같이 살 때 아빠가 큰 소리로 화내면서 자기 장난감 망가뜨린 거, 삼계탕 싱크대 엎은 일 등 자기가 사진 찍듯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무서웠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괜찮아요. 엄마가 나를 지켜줘요.”
그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얘기를 전했던 치료사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아이가 그렇게 느꼈다는게 신기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