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견디는 연습
그날 이후로 공황증상이 생길 때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종종 전화가 왔다. 응급실이라며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원가족들은 멀리 살았기에 응급실에 가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람이 힘들 때 나를 의지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에게 연락이 오면 받아주는 것 까지였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감정을 앞세워 달려갔겠지만, 내가 이성보다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불편한 걸 잘 못 견디는데, 불편한 걸 견디는 것 연습이 필요했다. 공황이 왔다는 그의 연락이 올 때 가면, 공황이 왔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 같았고, 그와 헤어지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냉정하지만, 내가 가지 않는 것이 그를 위해서도 나은 거라 생각했다.
공황장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심리적인 불안이 과해져 신체로 나타나는데,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그가 공황이라는 연락이 올 때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그에 대한 죄책감, 안쓰러움, 불안감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의지할 사람이 없어, 최후의 보루와 같이 나에게 연락한 그. 연락 오는 게 싫었지만, 연락하지 말라며 상한 갈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외로움이 힘들다면 새로운 사람도 만났으면 좋겠다. 아이의 아빠로서 이 땅에서 잘 살아주길.
그는 언제 공황증상이 나올지 모르니 약을 항상 들고 다니게 되었고, 이후에 광장공포증과 불안장애가 더불어 찾아와 사람 많은 곳은 나가기 힘들어했다. 그때 당시 일하며 아이를 챙겨야 하는 나의 삶만으로도 버거웠는데, 그의 상황이라는 짐까지 내가 짊어진 것 같은 마음의 무거움이 있었다. 큰 스트레스였다.
엄마에게 이 상황을 얘기하니 "네가 나와서 그런 거다."라며 내 탓을 했다. '우리 엄마 맞아?' 내 편을 안 들고 그의 편을 드는 듯한 엄마의 말이 나에게 상처였다. 엄마에게 괜히 얘기했다. 나는 유독 불쌍한 걸 잘 못 지나치고 마음을 쓴다. 누굴 닮았나 했더니 엄마인 것 같다. 엄마는 혼자 지내는 그가 너~무 불쌍했다. 그래도 나는 친정에서 지내고 있지 않냐면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에게 시달렸던 나는 엄마 눈엔 보이지 않는가 보다. 밖으로 보이는 상처가 아니어서 못 느끼는 걸까?
엄마는 문자가 익숙하지 않아 남동생에게 부탁해서 그에게 한 번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건강 잘 챙기고 잘 지내라고 내용이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내 마음은 이해해주지 않으면서 그를 걱정하는 모습에 엄마에 대한 서운함은 커져만 갔다. 별거 상황이라고 누구나 그처럼 공황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은 그에게 70만 원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다음 달에는 갚겠다는 말과 함께.
공황증상으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집 월세도 못 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의 어려운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안 빌려주자니 그의 불안한 멘털에 낙심해서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함께 대출이라도 받아서 빌려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달에 갚겠다고 했지만 받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이번만이 아니라 힘들 때마다 돈을 빌려달라고 할 것 같았다. 그에게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주변에도 물어가며 3일을 고민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그가 자살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컸다. 불편한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거절했다. 그 뒤로 나에게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을 때 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뇌가 저린 느낌이 들면서 뇌 쪽으로 피가 안 통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나면서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예배 중간에 나와 긴 의자에 누웠다. 10여 년 전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느꼈던 그 증상이었다. 병원에 갔었을 때 들었던 미주신경성실신. 일시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 일어난 현상인 것 같다. 교회 안에 누워있을 만한 곳을 찾아 한동안 누워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시 혈색이 돌아왔다. 왜 1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이 이번에 일어났을까? 그때도, 지금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렌터카 계약 만료시점이 되어 연장할지 마칠지 결정해야 했다. 돈 먹는 하마였기에 당연히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실사용자는 그였지만, 70만 원이 넘는 월렌트비를 안내면 나에게 연락이 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렌트비 독촉 연락을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그가 겨우 밀린 렌트비를 다 내고 차량 반납하기로 한 날. 그가 연락이 안 되거나 반납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어길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반납했다고 연락이 와서 안심했다. 드디어 그와 얽혀있던 복잡한 금전문제(?)가 완료되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었다.
공황 이후에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거나 전화를 해도 안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연락 안 되는 시간이 며칠, 혹은 몇 주가 되기도 했다. 외로움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닌지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나의 불안임을 인지하고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 그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 얘기하니, 경찰에 전화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경찰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면 그의 생사를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준다는 것이었다. 방법은 알았으나 경찰에 전화를 직접 건다는 게 또 하나의 큰 산이었다. 112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게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가정폭력을 신고할 때 말고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또 경찰에 전화해야 할 상황이 생기다니.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고민 끝에 112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요청받은 대로 그가 살고 있는 집주소와 그의 사진을 보냈다. 확인 후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났을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경찰관 두 분이 문 밖에 서계셨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상황을 들어보니 그의 주소와 친정 주소를 반대로 아시고 잘못 출동을 하신 거였다. 경찰이 집에 오니 엄마는 놀라셨다. 엄마에게 이 일은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경찰관의 연락이 왔다. 그는 집에서 자고 있었다며, 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잘 있으면서도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은 그에게 화가 났다. 걱정 끼친 것을 알면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나서도 연락 한 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