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일인가

안 맞는 옷 입어보기

by 히힛

퇴사하는 직원을 대신할 회계 담당 직원을 뽑기를 바랐는데, 대표님은 회계 업무 볼 직원을 뽑지 않고 내가 기존 업무에 회계 업무까지 하기를 원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수학 점수가 제일 낮았고, 숫자에 머리가 멍해지는 사람인데 이런 문과적인 사람에게 회계 업무라니… 회계 쪽 지식이 ‘0’ 이어서 걱정이 된다고 이야기를 해도 대표님은 기본적인 것만 할 거니까 괜찮다고 했다. 세금계산서 발급과 통장 잔고 정리, 세금신고로는 부가세와 법인세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워낙 쉽다고 얘기를 하셔서 ’ 내가 할 수 있으려나?’ 싶었다. 일단은 회사를 오래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대표님이 얘기할 때 처음부터 못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관두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일단은 해보겠다고 했다.


대표님과 미팅 후에 회계 담당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는 좀 달랐다. 대표님의 개인회사를 비롯해 법인회사 등 여러 회사가 공존하고 있는데 그 회사들 간에 운영상 자금이 오간다. 그걸 정리하고 증빙자료를 찾는데 오래 걸리고, 없으면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신입을 뽑으면 업무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고, 경력자를 뽑자니 인건비가 부담되고 경력자여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국세가 많이 밀려 있고, 거래처 미지급 문제도 있다고 했다. 산 너머 산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막막한 회사의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경력자가 와도 화사상황에 적응하기 힘든 판국에 운영 디자인 업무를 하다가 난생처음 회계 업무라니! 자의도 아닌 타의로.


한 달 동안 인수인계를 받았지만 그래도 헷갈리는 것 투성이었다. 매출, 매입의 개념부터 헷갈리는 나의 회계적인 지식에 대표님도 놀라는 모습을 보며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되뇌었다.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회계 지식이 0이라고. 그런 저에게 이 일을 시키시면 안 되죠!‘


1월이라 부가세신고 준비부터 거래처에 자금 이체, 통장 계좌 내역 정리,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데 돈과 관련되어 있고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다 보니 업무를 진행할 때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자금 이체에서는 큰 금액이 오고 가다 보니 확인을 했음에도 이체사고가 생길까 몇 번이나 확인을 하는지 모른다. 예민한 사람인데 일할 때 더 예민해져야 해서 에너지를 일에 다 쏟고 나면 너무 지쳤다.


부가세 제출 서류를 준비하면서는 사내 업체 간에 오고 간 금액이 맞는지 확인을 하는데 증빙자료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없으면 계약서류를 급하게 만들어야 했다. 시트콤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 업무도, 이런 업무도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아이가 방학이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나에게 말을 걸면 집중이 안 돼서 큰 짜증이 났고 일을 하기 위해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아이에게 티브이를 7시간 동안 보여주기도 했다. 업무시간을 3시간으로 줄였지만 그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의 양이 아니었다. 3시간 급여를 받으며 풀근무를 넘어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자니 억울함과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매일 이렇게 일하다가 병나겠다 싶은 하루하루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누굴 위한 일인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한 건가? 회사의 상황과 필요에 의해 내가 너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계분야를 기본 지식으로 알아두면 좋겠지만 내가 필요할 때 배우겠다. 앞으로 회계 업무를 전문적으로 할 것도 아닌데, 내 본래 업무는 하지도 못하고, 금전적인 보상도 못 받고, 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피 말리도록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일은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다. 1주일 지나고 나니 이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대표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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