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회사

그래도 살만한 이유

by 히힛

다니던 회사의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퇴사를 했다. 믿고 따르던 팀장님도 퇴사를 하게 되어 빈자리가 컸다. 눈에 보이는 큰 매출이 없었기에 회사가 언제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쩌지 불안한 시간들을 버티고 있었다. 이직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최대 장점은 급여가 적더라도 파트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텨보자라는 생각이었다.


대표님의 호출이었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회사 상황이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육아휴직을 쓰던가 단축근로를 하던가 둘 중에 결정해서 알려달라는 말이었다. 육아휴직을 쓰더라도 나라에서 대신 급여를 받는 것과 같으니 일은 계속해달라고 들었는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도 아닌 육아휴직을 쓰면서 일까지 하던 대로 하라니! 아무리 인건비를 줄이려고 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대표님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본 뒤, 대표님께 단축근로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육아기 단축근로를 할 때 하루 최소 업무 시간을 확인해 달라고 했고, 3시간이라고 전달드리니 하루 3시간으로 업무시간을 줄이자고 하셨다. 싫어도 회사의 상황도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줄어든 시간만큼 급여도 더 줄었다. 나라에서 받는 지원금과 합하면 원래 받던 급여의 80% 정도를 받게 되었다. 업무시간은 줄었지만 업무량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풀근무처럼 일해야 했다. 마음속에서는 억울함이 자꾸 올라왔다.


급여가 며칠 늦게 나오는 건 흔한 일이 되었고, 한 번은 보름정도 늦게 나왔던 달도 있었다. 대표님은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했었고 급여는 받을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다.

'예전에 있던 직원분들은 몇 달씩 급여를 못 받았던 적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지?'

불안의 연속.

그래도 견뎌야 했다.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들 2명과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만나서 밥을 먹는다. 3명 중 1명이 생일이 되어 만났다. 친구와 근황을 얘기하다가 급여가 늦어져 몇 주째 못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니,

"그럼 생활을 어떻게 해? 나 전에 다니던 회사 그만둘 때 받았던 퇴직금 안 쓰고 그대로 저축해 놨는데 필요하면 얘기해. 진짜로."

라며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의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나에게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어려운 일을 해주겠다는 친구의 마음이 가늠이 되질 않았다.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었다.

"말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

재차 필요하면 꼭 이야기하라는 친구의 말에 눈물이 또르르 흘러버렸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가 있고, 나 인생 헛살지는 않았네! 나도 그 친구도 눈물을 훔쳤다. 그날의 여운이 며칠을 갔다.

'나에게 없는 것도 많지만 이미 주신 것도 많았구나.' 좋은 친구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회사는 서울과 용인에 각각 사무실이 있었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니 서울 사무실은 정리하고 용인으로 옮기기로 대표님이 결정했다. 용인 사무실도 기존에 있던 사무실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얻기로 했다. 용인이라니! 집에서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거리였다.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은 없었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일주일 한번 출근이라도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이 나에게 용인까지 걸리는 시간과 교통편을 물어보시고는 대뜸 요즘 MZ들은 얼굴 안 보고도 일한다는데 그래도 우리는 얼굴 보고 일해야 하지 않냐고 하셨다. 이 말은 즉슨, '멀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출근해라.'라는 말을 하신 거 같은데. 차라리 대놓고 해줬으면 좋겠다. '왜 그 얘기를 하신 거지?' 고민하지 않도록.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시무식을 용인에서 했었는데 거리는 멀고, 원하지 않던 회계업무까지 맡게 되고, 일하기 싫었다. 돈을 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이 퇴사하시면서 회계 담당 직원이 그 업무를 맡게 되었다. 팀장님 대신 후임을 따로 뽑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가 많아 힘들어했다. 그래도 잘 버티나 보다 했는데 결국 퇴사소식을 전했다. 결국 회사에 남은 직원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회계 업무 자리도 공석이 되었다. 회계 담당자를 뽑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뽑지 않기로 했단 소식이 들렸다. 왠지 그 업무를 나에게 맡길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대표님은 나에게 새로운 직원 뽑을 상황이 안되니 그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다. 통장 정리나 세금계산서 발행 같이 간단한 업무만 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평상시에 통장 내역만 잘 정리해 두면 부가세 신고, 법인세 신고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워낙 숫자에 약하고 회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걱정스러웠으나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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