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의 공황, 불안장애 증상이 조금씩 나아져갔다. 약을 안 가지고 다니면 불안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약을 안 가지고 다녀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불안이 많이 내려간 듯싶다.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그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의 상황이 좀 나아졌으니, 이혼에 대한 얘기를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류정리를 위해 법원을 갔으면 좋겠는데 언제가 가능해? 날짜 정해서 알려줘. 내가 맞출게.]
법원 가는 날을 내가 정하는 것보다 본인이 정하는 게 크지는 않아도 이혼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를 것 같아 만날 날을 그가 정하도록 했다. 외로움이 큰 그에게 이혼을 말하는 것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잠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용기를 냈다. 그래야만 한다.
그에게 답변이 왔다. 법원에 가겠다는 것이다. 기적처럼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동안 이혼문제를 피하기만 했던 그가 비로소 문제를 직면한 느낌이었다. 답변을 받았지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왜 생각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니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데까지 자그마치 2년이 걸렸다. 그와 법원에 갈 날짜를 정했다. 기도응답이 이렇게 되다니.
합의이혼의 기다림이 길어졌을 무렵 친한 친구가 아버지가 아시는 분 통해서 무료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데 생각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소송이 진행되면 심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해서 되도록 소송은 안 하고 싶었다. 소송 없이 협의이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혼 절차에 대해 다시 알아보았다. 가정법원이나 지방법원에서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혼소송은 가정법원에서 하고, 협의이혼은 지방법원에서 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협의이혼이니 지방법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방법원은 그가 살고 있는 곳 근처와 친정 근처에 있는데 고맙게도 그가 친정 근처 지방법원으로 오기로 했다. 검색으로 법원을 가기 전 준비해야 할 서류를 알아보고 그에게도 알려주었다. 준비서류는 가족관계증명서(상세), 혼인관계증명서(상세), 주민등록등본, 신분증이었다.
그와 법원에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보내고, 회사에는 연차를 쓰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가 차를 빌려온다며 데리러 오겠다고 했는데 굳이 불편하게 가고 싶지 않아서 법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인생 처음 법원에 와보니 떨렸고, 바라던 이혼이었지만 좋은 일로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법원 안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물어보며 찾아갔다. 가보니 생각보다 이혼을 위해 온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아주 젊은 부부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까지. 다들 굳은 표정에 분위기가 냉랭했다. 그나마 그와 내가 가장 유한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내가 이혼의 과정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들을 색안경 끼고 봤을 텐데. 이제는 그들이 여기에 오기까지의 어려웠던 마음에 대한 공감이 되었다.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를 작성하고 양육과 친권에 관한 협의서도 제출했다. 협의서에는 친권자와 양육자를 지정하고, 양육비 금액과 지급 방법, 면접교섭 일정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양육권과 친권을 내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친권이 없으면 키울 때 불편하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그에게 하고 그도 별 말이 없기에 양육권과 친권에 내 이름을 썼다. 양육비는 그가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4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아이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했다.
여러 서류를 작성 후, 온 김에 한 번에 하면 좋다고 해서 영상을 보고 추가 교육을 받고 서류를 제출했다. 아이에게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었다. 아이가 없으면 1개월 후에 이혼이 확정되지만, 아이가 있기 때문에 3개월 후에 다시 방문을 해서 최종 이혼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3개월 뒤에 마음이 바뀌어서 안 나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3개월은 금방 지나갔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최종이혼판결을 받는 날이 되었다.
다행히 그도 법원에 도착했다. 그의 눈은 울고 왔는지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혼 판결을 하는 날이라 처음 가정법원을 왔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의무적으로 상담사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의무적인 상담을 해주시다가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별거부터 하고 있다고 하니 그와 나에게 어떤지 각각 물어보셨다. 그는 "힘들다."라고 했고 "나는 너무 좋다."라고 했다. 나에게 그 시기를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물어보셨고, 기도와 신앙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상담사님은 그가 나에게 분노를 쏟았던 이유를, "원가족에게 있던 분노가 나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니 그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랬을 수 있겠다 싶었다.
상담사님은 그에게 이혼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부분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그는 "사진 찍은 게 취미인데 아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 책 만들어서 아이에게 주고 싶다."라고 얘기했고 나는 그에게 "도움 될 것 같다."라고 했더니 상담사님은 나에게 아직 구원환상 못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당황스러움에 "그럼 뭐라고 얘기해요?"라고 물으니 "아이가 좋아하겠다."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그런가? 내가 구원환상을 못 버린 건가?' 혼란스러웠다.
판사를 만나기 전 대기실에는 정말 많은 부부들이 있었다. 대화 한 마디 없이 조용한 곳에서 그와 아이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별거를 먼저 하면 좋은 점은 감정이 정리된 후에 이혼할 수 있다는 것일까? 친정에 온 직후 그에게 분노의 감정이 차있을 때 법원을 왔더라면 나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 같다. 감정은 지나간다.
차례가 되어 합의이혼판결을 들으러 들어갔다. 무거운 분위기에 여자 판사님의 딱딱한 말투를 듣고 있노라니 흡사 혼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혼 판결을 받고 나왔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경험하며 이혼에 대한 무게감을 느꼈다. 그가 놓아주지 않아서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이혼을 합의로 할 수 있었다는 게 기적 같았고, 이제 정말 홀로서기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것보다도 생계에 대한 무게감이 더 크게 와닿았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보자.
나를 돕는 분이 계시니 혼자가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별거생활 2년이 조금 넘어서, 드디어 이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