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

현실적인 이야기

by 히힛

헤어짐의 마지막 순서가 남았다. 이혼판결이 완전한 끝은 아니었다.

그와 날짜를 정하고 아이를 보러 친정 근처에 왔을 때 친정 근처 구청을 방문했다. 3개월 안에 시청이나 구청에 가서 이혼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한을 넘기면 이혼이 무효가 되어 처음부터 이혼을 위한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같이 가서 해도 되고 한 명이 가서 해도 된다. 그와 같이 갔지만 신고절차는 내가 진행했다.


준비서류로는 이혼신고서, 협의이혼의사확인서와 양육과 친권자결정에 관한 협의서다. 서류상으로 얼른 정리가 되어 한부모가정 신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일 안으로 이혼신고가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개운하면서도 책임감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나의 이혼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그걸 기어코 했냐."라며 무거운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 앞에 죄인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엄마는 전에도 나에게 "이혼 안 하고 그냥 이렇게 따로 살아도 되지 않냐."라고 했었는데 그러면 여러 가지 귀찮고 불편한 일들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서류정리가 안되니 한부모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될 것 같았다. 그가 재결합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애매하게 지낼 바에는 법적으로 확실하게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아이를 아빠 없이 키우냐부터 네가 어떻게 혼자사냐라는 말에, "아빠가 왜 없냐 따로 사는 거지, 힘들긴 하겠지만 먹고살만한 돈이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살만해."라고 했다. 엄마가 혼자된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만, 내 마음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고, 앞으로는 더 잘 살 거야."라는 응원을 엄마한테 듣고 싶었는데...


크리스마스에 아이와 함께 그를 만났다. 그는 아이에게 선물을 준 뒤, 나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받자마자 '선물을 왜 나한테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선물 안 받아도 돼. 나는 신경 안 써도 되니 아이만 챙겨."라고 그에게 말했고, 그는 이미 산 거니까 받으라고 권했다. '이혼한 사이에 굳이 선물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거절하기에도 그래서 받았다.

선물을 보니 에어팟이었다. '못해도 몇십 만원 할 텐데. 이거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양육비로 주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는 잘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들었다. 생각해 준 마음은 고마웠으나, 그 마음이 부담도 되었다. 선물은 받았지만, 부담스러움에 몇 달 동안 쓰지 않았고, 중고거래로 팔아서 양육비로 쓸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이는 어느덧 8살이 되어 유치원 졸업식을 하고, 초등학교 배정도 받았다. 아이 관련한 행사에는 아이를 위해 그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이제 별거가 아닌 실제로 이혼도 하고, 아이가 8살도 되어서 이 상황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는 아이에게 "아빠가 마음이 아야 해서 약도 먹어야 하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야 낫는대~. 아빠가 다 나을 때까지는 같이 살 수 없어. 아빠랑 같이 사는 집도 있고, 아빠랑 따로 사는 집도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사는 집도 있고. 집마다 다양하게 살아.'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아이가 좀 컸으니 이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다른 설명이 필요할 듯싶었다.

"앞으로 아빠랑 같이 사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왜?"

"너와 엄마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거든. 같이 살지는 않지만 네가 아빠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볼 수 있어."

안전이라는 단어에는 아이도 동의하는 듯했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아빠와 헤어지려고 하면 "아빠랑 더 있고 싶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나와 있을 때 아빠와 더 오래 있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이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같이 살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의 감정만 다독이기로 했다.

"그래, 아빠랑 더 오래 있고 싶었는데 헤어져서 속상하구나. 그럴 수 있어."


나는 아이에게 바란다.

같이 살면서 아빠의 모습에 상처받고 미워하기보다, 같이 살지 않더라도 아빠와 좋은 추억 쌓으며 아빠에 대해 좋은 기억이 남기를.


딸아이와 자기 전에 종종 아빠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와 따로 살고 있는데, 어때?"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빠 보고 싶어. 어른되면 따로 나가서 살잖아. 그래서 나는 어른되기 전에 아빠랑 같이 셋이서 살아보는 게 꿈이야."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멈칫했다. 아이의 마음을 알지만 들어줄 수 없기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집에서 나올 때 아빠가 울었잖아. 그러면 이젠 안 그러지 않을까? 나는 아빠 믿는데, 엄마는 왜 아빠를 안 믿어줘? 엄마한테 실망이야!"

아이가 아는 것 이외에 그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 아이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네가 나중에 더 크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 이 글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해. 나에게는 한 때의 인연이었지만, 너에게는 우주에서 하나뿐인 아빠잖아. 너의 뿌리이기도 한 아빠가 너에게 미운 사람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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