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심리상담사를 만난 후기.

by 김까치


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 2년간 3명의 심리상담사를 만난 경험이 있다. 3명의 심리 상담사를 만나게 된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하여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절이 오면 잠이 오지 않고, 잠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눈물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수능 전날과 수능이 끝난 후에 경험한 불면증의 현상이 취업률이 보장된 물리치료학과를 관두고, 사학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학점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그대로 생존에 대한 갈급함이 대학교에 다니는 내내 녹아 있었다.


상담센터에 어떻게 찾아가게 됐는 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다만 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 시스템을 활용한 경험이 있었기에 학교의 모든 것을 활용하자는 생각에 따른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났던 상담선생님은 모두 여자였다. 첫 번째 만났던 상담선생님께 내가 가진 모든 문제에 대해 털어놓는 것이 생각보다 되게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낯선 영역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센터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나 했던 말은 “시험기간이 되면 잠이 안와요.”였고, 정해진 회기 시간에 따라 주1회 1시간씩 방문을 꼭 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불면증’보다는 ‘나의 외모 치장’에 대해 바꿔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외모를 바꾸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감이 생기면 불면증이 사그라들것이라고 생각하신 듯 하다. 그말에 따라 귀를 뚫는 선택을 했으나 그것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외적으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시험 불안은 계속 되었고 더 가속화 되었다.


두 번째 만난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 석박사과정에 임한 분이었다. 나는 이분과 상담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오래 상담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 마음은 나와 같으셨던 것 같고, 실제 방학에도 시간을 할애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가정의 불화나 어떤 점이 성적에 그렇게 심각하게 신경을 쓰이는 지에 대해 파악했으나 어느순간부터 상담이란 것 자체가 마음에 돌을 내려치는 것처럼 너무 괴로워졌다.

한번도 상담에 빠지거나 미룬 적은 없었지만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잿빛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놀이터에 혼자 1시간 동안 울었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과정속에서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상처를 지우고 없애는 과정에서 내가 한 선택이 부모님에게 최선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에게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계속 상담을 받게 되었다.


세 번째 만난 선생님은 만났던 상담선생님 중 가장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신 분이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나도 긴장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과 상담회차 중 기억이 나는 건 그분이 취업상담센터의 문을 열어주면서, 먼저 들어가셨고 나도 이어서 들어갔던 행동이었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상담을 해주셨기에 제가 저를 돌아볼 수 있음에 고맙다고 편지와 핸드크림을 드렸다. 마지막 회차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사람마다 상담을 받는 방식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상담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상담회차가 없어지고 졸업한 이후에 심각하게 힘든 시간을 많이 보냈다. 상처를 직면했으나 삶의 고난은 파도처럼 몰려왔고, 그 파도를 타기에 나는 역량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하다고 나를 무작정 비난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화살을 날리는 느낌이 강했기에 매번 울면서 잠을 자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다량의 커피를 마시는 행동을 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이 내려가면서, 점차 강해진 나를 만날 수가 있었다. 나는 항상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임한 것은 나이고, 그 과정 속에 충실하기 위해 심리도서를 읽어보고 다양한 심리기법을 직접 모두 적용해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담에 임하는 것은 다 좋지만 상담선생님이 3번이나 바뀌는 이례적 경험은 같은 경험을 또 말해야하는 상황이 굉장히 거북한 상황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마치 비가 오다가 레인보우가 뜨고 레인보우 뜨다가 해가 뜨는 변덕스러운 기후 변화처럼 말이다.


한때는 상담선생님이 뭐가 필요하지?라고 반문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은 결국 구덩이가 어떤 구덩이인지 어떻게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아는 전문가에게서 비롯된 것이니까. 상담선생님을 찾아갈 정도면, 고락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고 나는 어떤 선생님을 어떻게 해야 잘 만날 수 있나요?영역에 대해 “글쎄요. 복불복이죠.”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나에게 맞는 사람과 맞는 옷이 따로 있듯이, 누군가에게 좋았던 상담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상담선생님이 되곤 하니까.


하지만 나는 유료로 상담을 이용해야한다면 직접 그근처에 방문해서 커피를 마셔보기도 하고, 후기를 인터넷에서 읽어보기도 하고, 내가 무엇을 말해야할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질 것 같기도 하다. 상담의 회차가 정해졌다고 해서 다 끝까지 끌고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관둘 수 있는 일이지만 이왕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상담을 해보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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