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어른스러움은 창조성에 방해가 된다.
나는 유치한 사람이다. 소녀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되나? 바람에 낙엽이 굴러가거나 특히 내가 좋아하는 까치가 보이면 "우와! 까치다! 까치야~~까치가 또 보였어!"라며 해맑게 웃는 사람이다. 혹은 친구들과 대화하며 즐렉사라는 말을 한다거나 인형을 좋아했다. 심리학적 용어로 퇴행이라고 하는데 그런 단어가 붙어있을 때는 기분이 영 좋지가 못하다. 어른은 인형을 좋아하면 안되는가? 카카오프렌즈 춘석이와 라이언을 좋아했고, 신상품이 나오면 사서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귀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다.
이 인형들을 보고 있으면,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서 속하고 일을 하다보면 갬성이 무너지고 회복이 되지를 못한다. 그런데 꼭 유치함이 인형을 갖는데서만 국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는 나에게 시덥지 않은 농담을 했고, 더러는 맹구같다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유치함이라는 것에는 어른은 어른다워야하고, 어른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아이 또한 얼른 성숙해져 어른으로써 살아야하는 것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닐지. 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사회의 표준이 정해져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표준은 본인만 가지고 있으면 그만인 것이지, 타인에게 강요를 하고 타인또한 그것을 따라가야할 이유가 없다. 어디까지가 아이스러운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성인이 할법한 농담인지의 선이 늘 그어진 채로 산다면 세상이 온통 감옥 투성이라는 뜻인데 그런 세상이 본인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본인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소유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을 존중하면서 살면 되는 것일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래라 저래라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자아가 강해서도 아니고, 자아가 약해서도 아니며 그저 온기나 따뜻함을 느끼는 방식이나 그런것을 느끼고 살아가야하는 풍토나 환경이 다를 수도 있다.
나아가 어른들이 봤어야 하는 것들은 어린이용 도서에 가장 많다. 아이들에게 너의 장점은 무엇이냐, 너는 어떤 것을 좋아하냐 그런것들은 그림으로써 직관적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성인은 활자를 더 많이 봐야하는 측면에 놓여져있고, 그것자체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창조성이 다 말살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어쩌면 회사라는 공간은 나의 창조성이 없어지는 댓가로 봉급을 받아가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나역시 이 안온한 휴식이 잔고에서 비롯되고 있고, 이 잔고가 떨어지면 다시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있는 시간동안만큼은 유치하게 잘 살려고 한다.
학습지 교사로 가정방문을 하던 때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빙자하여 자신의 욕구를 표현했고, 때로는 유치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약속된 당일날 오지말라고 퇴짜를 놓은 적도 있었다. 자신의 꿈을 아이들에게 이뤄달라고 하는 것을 보며 저것이 어른됨이 맞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나를 숙주로 삼아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저것들의 숙주가 되느니 내가 잘못하여 튀더라도 나혼자 잘먹고 잘살아야지하며 그냥 관둬버렸다. 입사한지 2달차였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상급자 선생님께서 내가 하는 수업을 보시다가 본인이 하면 될것같다고 생각한 것인지 당일퇴사를 내려주셨다. 나아가 다른 곳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교육을 듣다가 내가 도망가버렸다. 그런 것을 보며,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들과 같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학부모가 애보다 못한데 그것들을 인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아가 디지몬 어드벤처의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세상 풍토에 한심함이 흘러나올뿐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https://youtu.be/7zEYhKU5jck?list=RD7zEYhKU5jck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어른이 어른다워야된다거나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이상한 트렌드를 가지고 있다.
지나친 어른스러움은 그사람의 창조성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