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이 되던 해, 물리치료과를 자퇴했다. 물리치료과에 간 이유는 어쩔 수가 없어서였다. 당시 간호학과도 추가합격으로 붙었으나 피를 무서워했고, 간호학과는 사람을 괴롭히는 느낌을 받았기에 사학과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물리치료과였다. 어쩌면 그 당시에 사학과에 갈 운명이 아니였던 모양인지 내가 입시를 하던 때에 철도가 뚫리면서 급작스레 지원자가 폭증해버렸다. 나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입장임을 느끼자 물리치료과에 입학해서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고자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을 탔었고, 교수님들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생각을 하실 정도였다. 부모님 또한 졸업을 하고, 돈을 모아 집을 사면 된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학교를 다니면서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데 나만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선택했던 것이 역사와 관련된 대외활동 '독도아카데미'였다. 그 대외활동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독도와 관련된 역사를 배웠고 울릉도에 직접 탐방했었다. 사실 결정적으로 대학을 옮기게 된 것은 그 대외활동에 참여하면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 미국대학을 다닌 오빠의 말이 한몫을 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고민이 있었다고 얘기를 했었고, 그 오빠는 내 고민을 천천히 메신저로 대화하며 들어주다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
'대학 옮기는 거 어때? 한번 도전해보는 거 좋잖아.'
나는 그때 가타부타 변명을 했었다. 하지만 이후 친구에게도 물었고, 친구도 그냥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을 했었다. 그때 나는 도전해보라는 말에 부모님 몰래 수시원서를 넣었다. 참 신기한건 도전해보라고 권유한 친구는 실제 본인이 바란 대학으로 쉽사리 도전을 하질 못했었다. 어쩌면, 내가 축복을 거기서 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것이 합격하기 위해 홀로 수시를 준비했고, 합격했다. 집에 이 사실을 알리자 집에선 난리가 났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외가댁에서 우리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내가 물리치료사가 되어 펼쳐질 앞날에 대해 우리가족이 얘기를 하던 시점에 나는 그냥 대뜸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나 사학과 붙었어. 나 물리치료과 자퇴할거야."
그 말에 삽시간에 얼어붙은 공기는 상상할 수가 없이 차가웠다. 아빠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너 무슨 돈으로 거기 다닐건데? 너 미쳤어?"
"OO아. 무슨 소리야. 그게? 너 왜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런 선택을 했어? 어? "
엄마는 울듯이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뜻이 변함이 없었다. 물리치료사로써 미래가 그려지는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나는 울릉도를 봤고, 전문대로써 느껴지는 자격지심이 나를 상당히 많이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 봤던 사람들은 모두 4년제 졸업에 서울에서 제법 알아주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싶은 치기어린 마음이 이러한 선택을 이끌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이런 나사빠진 삶에 남자나 술 둘중에 하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한 것에 나를 밀어넣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3일동안 울었고,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가려고 했더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 처음으로 뜻을 꺾었다. 세얼간이에서도 뜻을 꺾은 부모가 있었다고 하면서 이왕 자퇴할 거면, 빨리 자퇴하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 역시도 화가 많이 났는 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거기 가서 뭘 할 수가 있어? 너보다 잘하는 애들이 쎄고 쎘는데? "
난 그 말에 대해 답변하다 무시해버렸다. 듣기 싫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리치료과 학장님과 면담을 거쳤는데 학장님도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난 뜻을 굽히지 않았고, 현실에 배반되는 선택을 한 나는 여전히 자리를 못잡은 채 지금과 같이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곤 했다. 왜 물리치료과를 때려쳤을까. 그냥 다녔다면, 적어도 내가 바라는 200만원 혹은 그 이상의 삶이 나에게 지금보단 쉽게 펼쳐졌을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종용당한 순간을 기억한다. 어떤 교수님이 시험에 적중해서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강제서명을 하게 했었다. 하지만 난 그 교수님이 결코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서명을 했고 나또한 서명을 했다. 그걸 보며, 내가 어떠한 길에 나아갈때 결코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난 그길로 관두는 것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런 것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반발심을 제법 크게 느꼈는지 자퇴자만 3명이 나왔다.
역사학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다. 왜 너는 동아리에 참여하지 않냐는 거였는데 난 다 무시해버렸다. 학점이 중요하지, 친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우물안 개구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보다는 나를 선택하고, 나를 존중하는 선택을 했기에 숱한 많은 인생의 고락속에서도 언제나 답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역사학 이후에 복수전공을 선택한 건 경영학이었고, 경영학 속에서 나를 찾아 헤매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나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지 초등학교때 고민했던 나로 돌아가는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