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목련은 기다린다
겨울이 들어서는 초입에서 목련은 가지에다가 쌀알만한 꽃봉오리를 올렸습니다. 그게 엘리야의 기도에 나오는 손바닥만한 먹장 구름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목련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꿈이었습니다. 시시껄렁하게 이제 와서 겨울의 엄동설한에도 꿈을 키우기 위해 참고 견뎠다고 모범생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목련은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목표로 살은 것도 아니고 초라한 꼴이지만 자기 몸에다가 달아놓을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무슨 거창한 미사여구를 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차면 자연히 임계점에 달해 자신의 몸의 구조가 바뀌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목련이 딱히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시간이 되니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쌀알만한 봉오리가 엄지손만하게 변하고 하얀 피부의 꽃잎이 눈부시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목련은 그게 자신의 분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눈을 뜨고 일어나니 생화가 아닌 인조화를 갖다 놓은 듯하였습니다. 자신의 피부가 그렇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회백색의 줄기와 가지에서 그런 물질이 탄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언가 절정을 향해 올라간다는 애탐이 있었습니다. 마음은 갈래를 못잡고 헤매고 있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목련은 어떤 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별만 초롱초롱하고 달만 노랗게 빛났습니다. 그런 맑은 하늘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예고와 같은 흑암이 찾아와야 그의 꽃에 생기가 돌 것이었습니다. 그게 쉽게 오지를 않았습니다. 하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도적 같이 오는 법이지만 마음만은 초조해지고 갈급하여졌습니다. 밤에 잠을 자도 잠도 오지 않고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오매불망 그의 옴이 그리워졌습니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매년 그랬기에 다 아는 수작이건만 이 시절만 되면 그는 하루하루 안달복달하면서 학처럼 목을 놓고 기다립니다.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고 시체말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고상한 문학적 언사를 농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산지사방으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젠가 저젠가 하여도 아무런 기미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잠을 자지 못해서 그날은 초저녁부터 잠이 까박들어버렸습니다. 자면서도 기다리는 마음은 굴뚝 같았습니다. 그의 몸에 뭔가 스물스물 기어가는 것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자신이 너무 몰두하다 보니 꿈에 나타났다고 꿈에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자기를 보았습니다. 그는 큰 강물을 건너다가 기우뚱 하는 사이에 물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온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자 그는 강물 속으로 더 들어갔습니다. 물 속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침묵만이 가득했습니다. 소리쳤지만 그게 자신의 귀로 들어오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서 가버렸습니다. 자신도 어떤 흐름을 따라서 한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렵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편안하였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손짓을 하는 것 같았는데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져서 얼굴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몸으로는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마구 달려왔었다. 얼굴을 쳐다보니 얼굴은 없고 하얀 빛만 눈부셨습니다. 목련은 놀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디선가 사르륵 소리가 났었습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벌써 봄비가 목련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목련은 망연자실하고 자리에 서서 자신의 꽃봉오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꽃잎들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폭죽 소리 없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다가 느낌표를 줄줄이 붙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느끼라는 것인가라는 것은 차후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