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5

5 그저 있는 그 자체

by 현목

5 그저 있는 그 자체



그는 목련 꽃 위에 내렸습니다. 아니 내렸다기보다는 분위기가 젖었습니다. 그에게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가 다녀간 곳은 그가 다녀간 다음에야 왔다간 표시가 나중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꽃잎 위에서 안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향긋한 내음이라기보다는 꽃 자체의 존재에서 나는 체취였습니다. 향긋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습니다. 그 말은 상대를 자신의 쾌감을 위한 대상으로밖에 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련이 무슨 냄새를 풍겨서 무엇인가를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것입니다.


그 속은 밝았기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살며시 내려가면서 속을 더듬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수술과 암술이 생경하였지만 그는 만지면서 더 내려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는 행위의 주된 임무는 내려가는 것이니까요. 그도 어디까지인지는 모릅니다. 내려가다가 언젠가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입력된 대로 사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준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에 그는 묵묵히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습니다.


더는 내려갈 데가 없습니다. 그는 그 속에서 움크리고 자신을 보았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나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른해진 자신을 목련의 꽃잎에 기대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난 밤에 여기에 내린 것은 순전히 운이었고 그런 만남은 자신의 여정의 계획에 딱히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짧은 수명 속에서도 언제나 운은 있었습니다. 누구는 가난한 집의 마당에 내리기도 하겠지요. 실연 당한 사람의 머리맡으로 갈 수도 있지만 아무튼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나나봅니다.


목련이 오늘 자신 때문에 활짝 핀 것이 겨우내내 인내하고 온 보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그는 보지 않습니다. 분명히 겨울의 엄동 설한에 목련이 묵묵히 꽃봉오리를 부풀려온 그 인내의 세월을 일부러 부인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서당의 훈장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존재에는 무조건 의미를 갖다 붙일려고 하는 그 못된 버릇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그는 갖고 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있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거기다가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고는 스스로 만족해 하고 심지어는 무슨 대단한 진리를 발견한 양 시라도 짓는 것은 우습지 않나 하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단지 그는 비로써 내렸고 목련은 반응한 것뿐입니다. 꽃잎이 벙긋한 것은 그게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이지 딱히 봄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지금 꽃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봄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는 갈 데가 없고 짧지만 보람 있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니고 이제는 그의 생이 다한다고 그저 담담히 기다릴 뿐입니다. 거기에 무슨 감정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저 왔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서러울 것도 슬플 것도 없습니다. 만남이란 그런 것이라고 봄비는 진작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다가 두고 왔습니다. 어제부터 내린 그 여정이 그다지 짧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루살이 생이나 백 년 넘게 산다는 바다거북이나 그게 다 그것입니다. 오로지 지금은 자신이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니 중요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봄비는 차츰 자신의 몸이 비어져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져 갔습니다. 자신에게 남겨져 있는 한줌의 생명을 자신이 지켜보았습니다. 언젠가는 다 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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