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6

6 산길을 그저 걷는다

by 현목

산길을 그저 걷는다



목련은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정작 귀를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들어도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과 귀라는 감각 기관으로는 잡을 수 없을지 몰라도 그는 분명히 몸으로는 느꼈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가운데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질러가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환청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왜 환청처럼 걸어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소리가 들린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실체가 있는 법입니다.


그 소리가 자신을 밟고 지나갈 때 목련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언가 감전이 된 듯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내부 속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던 기억들이 산산이 흩어지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봄비가 노리는 것은 그것인지 몰랐습니다. 산지사방에 날아가버리는 그 조각을 쫓아서 뛰어갔습니다. 강변의 햇살에 반짝이듯 반짝이면서 둥둥 떠다니는 종이조각이 바람에 휘날리며 제 갈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따라서 허둥대며 갔지만 손을 대면 언제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봄비의 목련과의 만남은 언제나 이랬습니다. 후두둑 지나가고 나면 대상은 사라져버리고 봄비는 언제나 산야에 혼자 남아서 산길을 걸어갔습니다. 슬픈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쁠 것도 없었습니다. 우정 그는 눈 앞에 다가오는 풍경에 눈길을 돌리며 손으로 나무 껍질도 만지고 풀도 쓰다듬고 개망초의 초라한 이파리도 한참을 보다가는 머리 위에서 외마디를 지르고 달아나는 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소멸한 그것은 허상이었다고 위로하면서 돌아오는 그가 하는 것은 길을 걸으며 돌부리를 차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발은 아프지만 통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아간 파랑새를 찾아나서는 것은 어리석다고 자신에게 타일렀습니다. 파랑새 한 마리가 사라진다고 하늘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타난다고 하늘이 갑자기 휘황찬란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어디선가 풀냄새가 나고 산속의 공기가 그의 폐부로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다시 산의 힘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터벅터벅 돌아오는 그 길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 것을 발뿌리에서 쳐다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사는 게 재미날 것도 안 재미날 것도 없다는 걸 무슨 득도를 한 것처럼 사물을 내려다 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걸맞는 발견의 기쁨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그는 조용했습니다. 그는 이 산길을 그저 오랫동안 걷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반추할 추억을 삭제시키고 오직 걷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머지 그의 생애에서 반드시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목련의 귀에 또 다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입을 앙 다물고 누가 뭐라해도 듣지 않고 제 갈길만을 가는 봄비였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거기서 왜 그런 소리가 난다고 목련은 느껴야 하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봄비가 지나가면 그의 속에 단단히 굳어져 있었던 기억들이 전달할 수 없는 온기에 의해 다시 풀려져 부드러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목련은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가슴에서부터 솟아나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제는 활짝 펼쳐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봄비에게 보이고 싶었지만 그가 부르는 소리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는 산길을 돌아 터벅터벅 가버렸습니다. 분명히 들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