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동백꽃 붉은 마음이 기도이다
봄비는 멀리서 보니 빨간 점이 하나 보였습니다. 붉은색은 강렬하므로 시선을 끕니다. 생명체로 하여금 감정을 한번 더 울렁이게 합니다. 파란색의 찬 이미지보다는 붉은색이 원초적인 반응을 하도록 되어 있는 셈입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검은 밤하늘에 붉은색이 걸려 있으니 자연히 눈이 돌아간 것은 사실입니다. 점점 다가갈수록 더 붉게 보입니다.
여수 오동도에 가면 동백꽃이 피고 있습니다. 동백꽃은 붉은색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할 말을 속에다가 동여매고 억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터지면 피라도 줄줄 흐를 것을 상상하지만 그런 일은 그다지 없습니다. 그저 탱글탱글한 붉은색을 보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릅니다. 윤기나는 동백의 잎사귀를 보는 순간 그 동백꽃의 붉은색은 응고되어 무언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런 동백꽃을 연상시키는 붉은 불빛이 공중에 달려서 비추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눈이 부시고, 가고서는 실망하였습니다. 네온사인으로 덕지덕지 이어져서 흘러내리는 붉은 빛의 십자가였습니다. 무언가 고상한 것을 기대하고 다가갔던 봄비는 허전하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기가 데리고 온 비로 그 십자가를 감쌌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어떤 광휘가 돌더니 십자가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 속에서 봄비는 보았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별 볼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자랑할 것도 없이 유혹에 빠지면 빠지는 대로 허덕이면서 넘어지고 그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섭게도 끈질긴 집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넘어져도 일어나는 비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신음 소리를 내고 금방 좌절하고 돌아설 것 같은 데도 비 온 뒤에 돋아나는 파란 풀잎처럼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잴 것도 없는 그들인데도 아무리 절망하여도 일어서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벌판에 널부러져도 반드시 바라보는 곳이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황금으로 꾸미지도 않은 싸구려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십자가였습니다. 봄비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런 의미없는 기호가 뭐가 된다고 그들에게는 살아난다는 소망을 주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봄비는 좀더 십자가에게 가깝게 다가섰습니다. 그 속을 더 이상은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에서는 눈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광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핏 보니 그 안에는 누군가가 기도하는 모습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어디선가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갑자기 어지럽더니 봄비는 비틀거리며 사선으로 내렸습니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현기증을 느낀 것입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무언가 있는데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최후의 방법밖에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그 스스로가 그 광휘 속으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봄비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무척 뜨거워서 그 속에 들어가자마자 휘발되어 증발하리라 생각하였지만 그의 몸은 온전하였습니다. 이제는 정신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전후좌우를 둘러볼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그 안은 생각보다는 훨씬 넓고 아늑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봄비는 기왕에 들어온 것이라고 자신을 달래면서 더 전진하였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있는데 봄비 자신이 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기척을 내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봄비는 놀라서 자지러지고 말았습니다. 맙소사!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