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학문을 위해, 시를 위해, 유물 파는 일을 위해 사랑을 그 다음 순위로

by 현목

허수경이라는 이름은 나에게는 묘한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그녀의 시집을 샀던지 아닌지 아물아물 하지만 몇 편의 시를 읽은 기억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떤 내용도 떠오르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토요일마다 일간신문의 독서란에서 책을 안내하는데, 그녀의 책, 「너 없이 걸었다」를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녀를 소개할 때는 ‘저자 허수경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다른 작가나 저자들의 이력에 이렇게 출생지를 이야기는 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나도 30대 후반에 우여곡절 끝에 진주에 정착하여 산 지 30년이 됐습니다. 거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고향이라는 느낌은 없었고 가끔은 내가 왜 이 거리에서 헤메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진주 출신의 저자라는 데는 약간의 친밀감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그녀의 독특한 삶의 방식에 내 시선이 더 향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K대학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서 시인으로 등단하고 방송작가로 생계를 꾸리다가 갑자기 28살 때인가(1992년) 독일에 가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일생을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뭔가 신비한 느낌이 내게는 듭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저런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구름처럼 흘러들어왔다가 사라집니다.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독특합니다. 열네 명의 독일 시인의 시를 한편씩을 쓰고 나서―프롤로그에 하이네 시인의 시가 하나 더 있지만―뮌스터 거리를 걸으면서 그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건물 예컨대 카페나 꽃집, 음식점, 술집―특히 성당 얘기가 많지만―등의 구체적 건물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감상을, 앞에서 내세운 시와 잘 섞어서 얘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옴니버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몇 가지의 일화를 한 영화로 엮는 것이라고 기억합니다. 굳이 이 책의 형식이라면 이런 ‘옴니버스’ 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들이란 원래 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여기 나오는 시들은 한두 번 읽어서는 그다지 머리에 가슴으로 잘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시인들 중에는 하인리히 하이네, 빌헬름 뮐러,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볼프강 괴테,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정도는 그런대로 익히 아는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안녕’이라는 제목의 아테네 폰 드로스테휠스호프라는 여성 시인이 쓴 시가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시인은 평생 처녀로 살다가 이 지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는 알프스 근처의 보덴 호수 곁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났으나 그 남자는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깨어진 사랑 뒤에 남은 시가 이 시였습니다. 어쩌면 저자는 이 시를 빙자해 자신의 사랑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불가능한 사랑을 했던 적이 있었고 모든 것이 떠난 지금 ‘그 사랑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내 속으로 들어와 거대한 물 흐름을 만든다는 것도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물 흐름은 사랑이었고 이제 그 사랑은 물 아래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자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지는 한 챕터만을 집중적으로 느껴보면 다른 챕터는 대충 짐작이 가리라 봅니다. 열네 개의 챕터 중에서 열한 번째 챕터에서 저자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녀를 한 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저자가 한 말을 전하는 셈이 되겠습니다.


뮌스터라는 도시를 흐르는 강을 뮌스터아 강이라고 합니다. 묘하게도 그 강은 저자의 고향인 진주의 남강을 연상시킵니다. 츠빙어에서 키펜케를 거리를 지나 아호수(Aasee) 걸으면서 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자는 내 고향 도시의 한복판에 남강이 흐르고 있다고 뮌스터아 강에 오버랩시키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강에는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멀리서 보는 개념적인 강이 있고 그러나 가까이 가면 햇빛, 구름, 바람이 그때마다 개입하는 개별적인 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인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강은 홍수가 되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기도 하나 정서적 위안을 주기고 한다고 했습니다.


괴테의「마왕」이란 시를 처음 읽은 것이 중학교 다닐 때라고 하며 저자는 돌아봅니다. 미트볼이 들어간 스파게티를 먹은 추억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시에 대한 얘기가 계속됩니다. 소년은 마왕의 유혹을 받습니다. 지방 도시에서 가난하게 살던 저자는 스파게티에게 유혹을 받은 것은 바깥을 향한 동경이었던 것을 깨닫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왕이 자신을 유혹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스파게티의 기억을 빌어 자신의 독일로의 이동을 빗대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이제 저자는 눈앞에 보이는 건물들을 보고 묘사하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나무 벤치들이 보입니다. 벤치 밑에 누군가 벗어놓고 간 남자의 구두를 보고 저자의 상상력은 또 다시 달립니다. 벽에 그려진 스프레이 낙서에 이릅니다. 미장원과 식료품을 파는 작은 가게, 꽃가게, 빵집, 아파트와 흡사한 4층 가량의 건물, 그 옆의 양로원, 건물 앞의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그들은 2차 대전 전과 후의 역사를 살아온 세대입니다.


양로원 옆의 꽃가게 이름은 민들레, 독일어로는 푸스테블루메(Pusteblume)로 ‘불면 날아가는 꽃’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꽃씨들은 가벼움으로 날아들어 정착할 땅을 찾는다고 하는 저자의 시적 감각을 봅니다.

중국집 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중국집 식당의 소녀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합니다. 저자는 꽃이 가득 핀 마당의 작은 집,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여자, 구슬치기하는 아이들, 굴뚝과 새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어쩌면 저자가 마음 속으로 그리는 상상속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 식당이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운하의 길을 걷습니다. 작은 동상이 있는 키페케를 거리가 나옵니다. 망태를 든 남자의 동상을 키페케를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도시와 도시 근교를 이어주는 장사꾼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뮌스터의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이어집니다. 키펜케를의 동상은 2차 대전 때 정치가들에게 정치선전물로 이용을 당했습니다.


뮌스터아 강은 도심을 흐르나 도시보다는 낮습니다. 성당의 탑은 걷고 있는 저자를 따라옵니다. 성탑이 11세기부터 있었고 화재로 불타기도 했으나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성당 옆에 신학교가 있고 그 안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이들은 느리고 조용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들도 마왕의 유혹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리위에서 거지 행색의 한 남자가 배낭을 메고 구걸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있었습니다. 『시학』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 공부 시절로 돌아갑니다. 열정만이 가득한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름대로 자신의 시학을 결정했습니다. ‘시를 정의하는 모든 가르침은 지금, 이 순간, 시를 읽고 시를 쓰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아버린 듯하다.’


책을 읽다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 시간을 놓친 기억이 나옵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늘로 심장이 찔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너를 떠나와 이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던 내가 영영 너에게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으리. 그리고 더는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음을 알리니. 네가 나를 기다렸던 그 자리에 존재했던 둘만의 시간도 차츰 사라지리.’


학문을 위해, 시를 위해, 글쓰는 일을 위해, 유물 파는 일을 위해 사랑을 그 다음 순위로 놓는 그녀의 아릿한 마음이 내게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위해 왕관을 내려놓는 사람도 있는데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공부를 위해 사랑을 버렸다기보다는 순서를 바꾼 그녀의 마음에서 어떤 ‘독한’ 고결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나는 그러지 못하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부럽고 마음 한 켠에 모셔놓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운하 길은 도서관과 연구소가 즐비한 뮌스터 대학 인문학의 심장지대입니다. 가톨릭 신학 연구소,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법학, 미술학, 고고학의 연구소들이 주변에 서 있습니다. 학생들이 그 속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들도 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한 미래와 빛나는 인문학의 정신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아득한 운하 길, 아직도 불 켜져 있는 도서관들. 책읽기가 노동인 인간의 슬픔.


다시 세속으로 들어가는 건널목이 나옵니다. 카페, 옷가게, 식당, 안경점, 작은 미술관, 그리고 호수가 펼쳐집니다. 호수가 좁은 운하 길을 걸으며 마왕의 유혹을 생각하던 마음이 넓게 트인 길을 만납니다. 작은 기쁨.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의 ‘너’에 대한 애상이 등장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 호수 앞에서 너를 생각할 때가 참 많았다. …… 그대의 웃음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 웃음 소리는 내가 이 지상에서 들었던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희미하고도 연해서 금방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저자는 그것도 마왕의 유혹이었다고 쓸쓸히 말합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 또래의 영감이 옆에 있는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주책 맞게 요즘은 눈물이 잘 나온다 말이야.” 인문학을 붙잡은 그녀의 뒷그림자를 엿본 것 같습니다. 느리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을 그녀의 걸음을 믿습니다. 비록 그림자의 모습은 언제나 다를 것이고 때로는 길게, 혹은 짧게, 희미하게 진하게 출렁거릴지라도 말입니다.


『너 없이 걸었다』는 한 편의 독일어 시를 소개하면서 뮌스터라는 저자가 사는 도시의 역사와, 거리 풍경의 묘사,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잘 버무리면서 글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여기 나오는 독일어 시는 적어도 제게는 이해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우리와는 정서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공부는 해박하여 글 중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거리 묘사는 역시 시인이라서 그런지 섬세하고 실감이 났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인 자신의 서정을 개인적인 일화까지 곁드리면서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풀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에 쓴 것인데 허수경 시인은 2018년 10월 독일에서 위암으로 향년 54세에 타계하였습니다. 유적지에서 유물을 파던 허수경 시인을 생각하면 무언가 애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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