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서'

by 현목

2012년인가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라는 헤세의 책을 보고 그 제목에 매료된 적이 있었습니다. 책을 사보려고 했으나 이미 절판이 되어 아쉬움을 가지고 졸필이지만 ‘그리움은 나를 밀고 간다’를 제목으로 수필을 한 편 쓴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 책을 구입해 보고 우선 목차를 보니까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어딘가 그런 구절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어제 다 읽었지만 정작 이 말은 없었습니다. 약간의 실망감을 가짐과 동시에 도대체 이런 멋진 말을 번역하신 두행숙 교수라는 분이 자의적으로 지어낸 것인지, 여기는 없지만 어디선가 헤세가 한 말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릴케의 서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김재혁 교수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그분은 직접적인 헤세의 그런 말은 없고 헤세가 쓴 글 중에 “Wandersehnsucht reißt mir am Herzen. ..”라는 구절이 있는데 “내 마음 속에는 방랑의 그리움이 인다”라고 번역되는 이 부분을 가지고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책의 원래 제목은 “Mit dem Erstaunen fängt es an: Herkunft und Heimat, Natur und Kunst” 우리말로 옮기면 “경탄과 함께 시작되다: 출신과 고향, 자연과 예술”이라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단지 그 당시 무언가 마음에 무거운 무언가를 남겼다는 느낌만이 남아 있습니다. 헤세는 외모부터 단정하고 가녀린 느낌을 받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바람 같다고나 할까요. 전통적인 서구인의 모습보다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독일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더 관심이 많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헤세를 잘 알지도 못하는 때에 일본에서는 헤세의 전집이 다 나왔다고 하니까요.


헤세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는 특히 풀보다는 나무에 관심이 많고 또 나무에 대한 언급도 많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도, 혹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피곤해질 때면 발코니에 나가 나를 올려다보는 나무들을 보면서 기분을 전환했다.”


책 속에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소박한 수채화가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에 그의 글을 직접 대면하면서 문장을 읽을 때 그의 글이 그의 수채화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조그만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 같습니다. 우렁찬 계곡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는 화려한 은유의 수사법도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어떤 비평가가 헤세는 토마스 만에 비해 독일의 메이저 작가가 아니라 마이너 작가라고 하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헤세 하면 구름의 시인이요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만. 헤세는 구름에 대해 이런 말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구름이 아름답고도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움직이면서 우리 눈에 죽은 공간에 불과한 하늘에 거리와 척도, 공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와닿아서 저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들을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제목 하의 글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서 애정을 가득 간직하고 기꺼이 다가간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보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부분이 나옵니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에서 언어로 상상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 인간은 이제까지 동물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았던 존재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변모합니다. 상상에 의해 추상명사, 관념어를 만들어 낸 인간에게 실제의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움이라고 하면 가장 기본적으로는 연인들 사이의 그리움, 나아가 부모 형제, 혹은 친구 더 발전하면 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서 고달픈 인생을 헉헉거리며 살더라도 나중에는 헤세가 말하듯이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그리움이 궁극적으로 나를, 우리를 밀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하게 말하는 능력」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면에 무언가를 담고 있다. 누구나 무언가 할 말이 있다. 그러나 그저 침묵하거나 더듬거리지 말고, 말로든 물감으로든, 음으로든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선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까뒤집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솔직해야 한다고 해서 옷을 다 벗고 다닐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한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 속의 생각을 진실하게 말하는 능력은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인간이 다 늙어서 이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등바등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그나마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게 고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꾸며서 그럴듯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헤세의 글을 보면 그는 그런 경지는 넘어서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학적 충동」에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그런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결국 여행길에서도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 오직 참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욕망, 그것이야말로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자아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불현 듯 10여년 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야지 하는 동경에 혼자서 설렌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려면 개업하던 병원도 한 달 이상 문을 닫고 떠나리라고 작정을 했지만 결국 저란 인간의 역량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의 남부 국경 생장 피에드에서 시작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의 여정은 하루에 20여 킬로미터를 한 달을 꼬박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은 이제는 산산이 부서진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지며 꾸었던 꿈은 일장춘몽이 되었습니다. 그 대신 저는 집 근처의 허접한 산―저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멋대가리 하나 없는―을 그저 할 수 있으면 느리게 서너 시간 걸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헤세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