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許萬夏

‘시는 논리가 아닌 향이다’

by 현목

이 산문집은 차창에 기대어 지나가는 풍경을 보듯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글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동료적인 유대감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열등감과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무얼 목표로 집중하고 살아왔나 하고 말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언어에 의해 규정됩니다. 그러나 존재와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미 칸트도 그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의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인간의 뇌 속에서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인간이 자의적으로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는 과학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박이문이 말한 것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랭보도 1871년 5월 친구 폴 도무니에게 부친 소위 『견자(見者)의 편지』에서 시인이란 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모든 감각의 오래고도 대규모적인 착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미지의 것에 도달하여 드디어 광란하여 자기가 보아온 것에 대한 지적 인식력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그것을 진실로 본 것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말은 결국은 은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시각은 정보를 수집하고 정신은 상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이해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정보를 통해 상투적인 인식이 아니라 파격적인 상상(은유)를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경주의 안압지 입구에서 기와 조각 가운데 있는 가릉빈가(半人半鳥)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정토(淨土)에만 산다는 새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듣는 새 이름입니다. 극락에 산다는 가릉빈가는 왜 아랫도리가 새일까요 머리에서 나오는 전신과 손에서 나오는 문화문명의 전제 혹은 토대, 기초는 땅에 닿는 발이 아니라 새의 발이라는 말인가요. 새의 발의 삶의 토대는 허공입니다. 새에게 허공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은 결국은 허공이란 말일까요.


허만하 시인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인문학적 깊이와 넓이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떻게 한시나 시들을 기억하고 술술 이야기하는지 놀랄 지경입니다. 릴케, 사르트르, 하이데거, 브르통, 메를로-퐁티, 폴 엘뤼아르, 아폴리네르, 세잔, 고흐, 바슐라르, 레비-스트로스, 자크 데리다…… 끝이 없습니다. 그는 병리학자인데 의외로 병리학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자신이 가장 많이 시간에 접하는 경험에서 어떤 이미지를 유추하기 마련인데 시에서도 그런 걸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병리학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연구할 과제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언제 그런 책들을 섭렵했는지 놀랍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절이나 특히 와당(瓦當) 등에 관심을 보이고, 풍경을 갖고 시를 쓰거나 산문으로 주제를 다루고 서양의 시나 철학을 자주 언급하지만 의외로 그런 서양문화의 정신적 배경이 되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박식과 술술 나오는 유창한 인용에 대한 저의 부러움을 풀어주는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문득 바타유의 말귀를 인용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노트를 뒤적여 본다.“ 그는 그냥 책을 읽고 지나친 것이 아니라 아마도 꼼꼼히 노트에 적어 놓고 필요할 때 저술에 활용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까지 가서 박남수 시인과의 해후에 대해 허만하 시인은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두 분의 만남이 이루어진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박남수)의 가슴에는 시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이 말을 만나는 순간, 저는 시를 쓴다고 하면서 제 자신이 시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이 두근거리는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대하지 못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저 시를 이용하여 저를 과시하려고 했고 그나마 좋게 말한다면 제 감정을 시란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지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사물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물시의 정의를 찾아보면 ‘주관적 감정을 읊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나 사물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해석하는 언어에 의한 조형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릴케의 『신시집』을 이야기하나 제가 읽고서는 사물시의 정의대로 잘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프랑시스 퐁주의 시들은 더 이해가 되는 편이었습니다. 저의 지력이 충분하지 않아서이겠지만 저로는 저의 감정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라고 일단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퇴직 후(아마도 65세 이후 같지만) 프랑시스 퐁주를 자신의 시에 적용했다는 말이 반가웠습니다. 저도 작년인가 퐁주의 시집들을 사서 읽고 경상대학의 퐁주를 전공하는 교수로부터 퐁주에 관한 논문들을 받아서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제가 느낀 것은 허만하 시인은 시든 산문이든 살면서 고단한 잡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고 풍경을 얘기하고 역사를 관조하고 인생의 허무를 인식하는 식이어서 어쩌면 이분은 구름 위를 걸으면서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미국의 코네티컷의 하트포드에서 같은 대학의 야마세 교수와 같이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대학 시절 녹향이라는 고전음악 감상실을 다녔고 특히 죽은 동생이 브람스의 이 곡을 좋아했다고 기억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어떤 연대감을 느낍니다. 대학 다니면서 명동의 고전음악 감상실을 많이도 다녔지요. 특히 브람스를 좋아했는데 교향곡 1번의 2악장에 나오는 오보에 소리는 알프산의 눈이 녹아져 내리는 풍경을 연상하며 코끝이 언제 시큰해지는 게 있습니다.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대목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현대시도 어쨌든 지금은 이미지가 주류입니다. 그런 이미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보통 편의적으로 채택되는 기준점은 1910년 경 런던에서 일어난 그룹의 활동에서이다”라고 T.S. 엘리엇은 쓴 적이 있다. 생전에 시집 한 권 없이 5편의 시를 발표하고 요절한 T.E. 흄의 운동을 재발견, 발전시킨 E. 파운드에 의하면 이미지란 시의 장식이 아니라 시적 언어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란 지적 정서적 복합체를 한순간에 나타내는 것이다.’


에즈라 파운드의 유명한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T.E. 흄의 「가을」이라는 시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밖으로 걸어나갔네./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위에 기대고/있는 것을 보았네./얼굴 붉은 농부와도 같은./나는 말을 걸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네./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네./도회지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서.’


이미 다 알겠지만 다시 복습해 보면, 군중 속의 얼굴과 꽃잎들, 달과 얼굴 붉은 농부의 이미지를 겹치고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폭풍의 몽상에서 이미지를 낳는 것은 눈이 아니라 놀란 귀다” “바람의 모든 단계는 저마다 고유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바슐라르의 질료적 인식은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제가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청각적 이미지가 시각적 이미지보다 더 본능적이라고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치원의 「黃山江臨鏡臺」의 시를 보자 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황산강은 찾아보니 김해군과 양산군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낙동강이라고 합니다.

煙巒簇簇水溶溶(안개 낀 봉우리 빽빽하게 들어서고 강물은 넓고 조용히 흘러가는데)

鏡裏人家對碧峰(푸른 봉우리를 마주한 인가가 거울 속에 잠겼네)

何處孤帆飽風去(가득히 바람 실은 배는 어디로 사라지나)

瞥然飛鳥杳無蹤(어느덧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취 없이 아득할 뿐)


어쩌면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최치원이 읊은 이 시의 마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두 가지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제1의 세계란 우리가 태어나고 살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우리들 바깥에 씌워진 형상의 세계이고 제2의 세계란 사람이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오든의 견해에 따르면 시인은 제2의 세계에 빠져도 안 되고 제1의 세계의 실천적 영웅이 되어서도 안 되고 시인이란 제1의 세계를 겸허하게, 자신 있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오든이 엘리엇에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적 시를 썼다는 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오든의 견해가 말과 행동의 양자택일이라면 허만한 시인은 그 어느 쪽도 자신의 시의 근거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의 시의 근거는 어디에 두는 걸까요? 인간 의식에 비치는 이미지는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의 집결이라고 보는 견해는 니체에서 보들레르로 계승되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는 ‘세계를 주체 의식에서 바라본 이미지의 총체로 본다고 규정하고 ’세계관의 시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허만하 시인은 세계에 의미는 없고 세계관의 잔해만 뒹구는 시대의 무의미 가운데 자신의 시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고 재차 묻습니다. 그렇다면 程子가 말했듯이 ’제1의 세계‘와 ’제2의 세계‘가 분화되기 이전, 주관과 객관이 분화되기 이전의 세계인가요? 마침내 허만하 시인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발레리가 파리대학 의학부 강당에서 강연한 내용으로부터 유추하여 ’나의 체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체험이란 경험의 산술적 퇴적이 아니다. 경험에서 한낱의 의미를 발견해 냈을 때 그 경험은 비로소 체험이 된다. ..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시의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 나는 죽음을 향한 생의 일회성에 두고 싶다. 그것은 인간 일반이란 개념이 용해될 수 없는 일인칭 단수 주격인 나의, 나만의 황홀한 가멸성이다. 나는 죽음으로써 나의 생을 완성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체험도 일회성이다. .. 렌즈를 통해서 광선의 뭉치가 한 점에 수렴되는 것처럼, 체험을 통해서 영원은 단독자의 목숨에 수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역으로 죽어가는 한 체험이 영원을 그의 접시에 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마치 한 잎의 낙엽이 온 가을을 감고 있는 것과 같이.’


긴 인용이지만 ‘낙엽’이라는 이미지가 허만하 시인이 말한 모든 걸 말해줍니다. 이 글을 쓴 것이 1975년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허만하 시인이 40대 초반인데 60대, 70대도 아닌 그가 이런 나이에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허만하 시인의 이 한 말씀이 저의 가슴을 찌릅니다. ‘한 시인에게 시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 시인이 시인으로써의 삶과 사상의 표백, 곧 한 시인의 세계가 그의 시적 창조 정신과 한 덩어리라 되어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광망을 내뿜고 있는 한 언어 예술 정신의 중핵이 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의미로서의 시집이 그것이다.’


저는 시집을 내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저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제 삶과 사상을 나타낸다는 의식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저 언어로 저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단순한 생각과 그것을 어설픈 열매로 만들어 과시하려는 생각뿐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허만하 시인은 레비-스트로스가 화약내 가득한 전선에서 봤다는 민들레꽃의 질서정연한 구조보다는 샛노란 꽃의 아름다음을 보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저 막연히 쓴다는 것이 아니라 민들레꽃의 아름다움이라는 프리즘으로 통해서 본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는 아름다움처럼 분석과 비평을 거절한다. 시는 눈부신 벼랑처럼 외롭게 서 있을 따름이다. 그 벼랑은 외롭다. 시는 개인의 고유한 내면 세계의 표현이기 때문에 개인의 정신사처럼 외롭게 다져질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외로움을 언어로 다질 따름이다.’라는 허만하 시인의 말씀은 비록 이름 없는 시인이지만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게 합니다. 이 대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산문집을 읽는 가치와 보람을 제게 가져다 줍니다.


마지막에 허만하 시인이 시(문학)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긴장이 됩니다. 자신이 자연과학(병리학)과 시의 세계를 하는 것은 두 가치가 처음에는 강물처럼 소용돌이를 쳤지만 지금은 한 방향으로 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시가 느낌(서정, 감정)만이 아니라 인식(존재와 삶의 긍정적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적 인식)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심대한 원경을 가지지 못하고 어떻게 저의 정서를 표현하느냐 하는 기술이라는 근경에만 오직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허만하 시인과 같은 경지를 바라기는 하지만 저의 지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는 논리가 아닌 향이다. 언어로 만들어내는 향기다. 미나리는 잘린 몸으로 시시각각 시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지향점으로 삼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발을 디뎌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