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馬 풍경』 /허만하

by 현목

허만하 시인과의 인연은 무척이나 오래 됩니다. 제가 예과 2년 때인 1969년에 그분의 시집 『海藻』를 사서 거의 읽지도 않고 서가에 넣어두고 있었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자로 지낸 분으로 마지막은 고신의대에 재직했다고 합니다. 저도 한때는 병리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의사이면서 시인인 분은 별로 없습니다. 유명하기로는 마종기 시인 정도라고나 할까요.


자서(自序)를 읽자마자 소설가 김훈처럼 사물의 해석에 능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와서 긴장을 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자 니콜라우스 크자누스, 파스칼, 아리스토텔레스, 릴케, 칸트 등의 언급을 보면서 독서량이 대단하고 인문학적 내공이 만만치 않다고 짐작을 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 결국 청마와의 해후와 그 이후의 청마와의 여러 가지 일화들, 그리고 청마의 시작법 내지 시관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청마는 1908년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1932년에 출생했고 대구 출신입니다. 청마가 허만하 시인보다 스물네 살이나 많아 거의 아버지뻘인데 어떻게 두 분이 만나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책의 뒤쪽에 보면 허만하 시인이 본과 1학년 때 자신의 대학에서 청마가 시에 대한 강연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김종길 시인의 소개로 대구 아르스라는 다방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 제가 보기에는 청마를 동료처럼 혹은 스승으로 평생 인연을 맺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허만하 시인의 시적 체취에서 청마의 풍모가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허만하 시인은 청마의 살아가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조명을 하면서 그분의 시의 특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청마의 시관은 허무 구조라고 했습니다. 그 증거의 하나로 청마의 「나의 살갗」이라는 시를 들고 있습니다.

‘나의 살갗―/저 허무의 무, 그 광막한 시공의 아득한/해안선!’

허만하 시인은 릴케가 최후의 병상에서 쓴 시를 대조합니다.

‘아, 생이란, 생이란 밖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밖’이란 대단히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허만하 시인은 말합니다. 심지어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라는 유명한 말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청마의 「나의 살갗」에 나오는 해안선, 즉 살갗은 우리의 몸과 몸밖의 세계와의 경계선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몸과 몸밖의 세계를 무로 연결시키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것은 허만하 시인이 시공간(詩空間)이란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는 ‘시인이란 언어로 하나의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실재 그 자체보다도 허상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언어는 의미에서 닫히고 시적 표현에 의해 열린다’라는 말을 허만하 시인도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시적 표현이라는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릴케의 세계 내면 공간이란 허만하 시인이 말하는 시의 공간입니다. 시의 공간이란 구체적 체험의 공간이자 의미의 공간이라는 말을 듣자 저는 어쩌면 안쪽 공간에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불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박목월의 「나무」라는 시를 인용합니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시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인생을 풍요롭게 살려면 자신의 ‘안’의 공간이 깊고 넓어야 합니다. 어쩌면 득도하거나 열반한 사람이 경지가 이것이 아닐까요.


둘째, 청마 문학의 특징의 하나는 ‘아득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했습니다.

청마의 「목마름」이라는 단장을 인용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저는 청마의 「그리움」이란 시의 시구,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이 시는 시조 시인 이영도 여사와 무슨 ‘섬씽’이 있는 것처럼 말할 때 인구에 회자되는 시입니다만 정작 허만하 시인은 이영도 여사의 얘기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가 이렇듯 당신을/애모함은 무슨 연유이랴?/당신의 용모? 당신의 자질/―아니거니!/당신을 통하여 저 영원에의 목마름을/달래려는 한 假像으로―/그러기에 아득한 별빛을 우러르면 더욱/애닯게도 그리운 당신!’


다시 말해 청마의 애모는 현실의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에 대한 목마름에 다름 아닙니다. 갑자기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나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파우스트를 구원해 주는 것은 그레트헨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셋째 청마의 시에서 우리는 지열 같이 끓는 분노를 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육이오 전쟁 중에 종군하면서 쓴 시 「결의―원산에서」는 ‘멀리 명사십리 끝에 맴도는 것은/일군 항공기의 표한한 결의런가/일체 眺望은/각박한 증오를 배지 않는 것 없나니/아아 이것이 인류의 피치 못할 길일진대/내 어찌 외로이 분노하여 또한 가지 않으리’


청마는 현실 정치에 대해 분노를 느끼면서 詩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마의 시를 읽으면 그는 광야에 서서 무언가 진리를 토하는 구도자 같은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넷째 ‘청마의 아포리즘 문학’이라고 한 챕터를 허용합니다. 그만큼 이것이야말로 청마 문학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포리즘이란 사전적으로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청마의 아포리즘의 기원이 바로 청마의 시에 영향을 미친 일본 시인 다카무라 코타로(高村光太郞)과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郞)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청마가 일본 유학 중에 접한 시인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청마는 시적 기술(記述)의 테크닉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색을 시라는 도구(특히 아포리즘 형식)를 통하여 표출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시적 철학자라고 할까요. 하긴 자신을 ‘서정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허만하 시인은 청마의 표현 양식이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하기사 요즘 청마 스타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있다면 구닥다리라고 박대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아포리즘 문학이 한 장르를 차지해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니체이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은 방대한 아포리즘 문학을 담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날 절벽 같은 너의 죽음 앞에/다시 안 열릴 石門을 붙들고 아무리 불러 號哭한들/내 소리 네가 들으랴?/네 소리 내가 들으랴?’ 「죽음 앞에서」


다섯째 청마 문학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하나로 인도주의 내지 휴머니즘을 들 수 있습니다. 청마는 시보다도 인생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여섯째 청마의 시를 서구적이라고 지적한 최초의 사람은 김춘수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청마에 대해 유교적, 노장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나 청마의 시세계는 실존주의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청마는 현실적 존재에 대한 추구가 큰 목적이었습니다.


청마가 실존에 대한 자각을 형상화한 시 「낮 석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明明한 백주의 沙漠 한복판에서/어디서 뉘가 행하는 行이냐/확대하는 空白이냐/두려운 두려운 시간의 氣絶이냐’


허만하 시인이 한 말을 인용합니다. ‘청마는 늘 죽음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리고 죽음의 이쪽에 있으면서 죽음과 친했다. 그것은 그만치 목숨에 대한 그의 사랑이 뜨거웠다는 말과도 일치한다. 아무래도 그는 자연 발생적인 실존주의자였던 것 같다.’


일곱째 시인 김종길이 청마 시의 본질적 성질의 하나로 순정을 꼽고 있습니다. 그 예로 「항가새꽃」을 듭니다. 항가새꽃은 엉겅퀴꽃을 이릅니다.

‘그대 그린 항가새꽃 되어 항가새꽃 생각으로 살기엔/여기도 즐거웁거니/아아 날에 날마다 다소곳이 늘어만 가는 항가새꽃/항가새꽃’


여덟째 청마는 시 정신을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어 달았습니다. 이념이란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라고 합니다. 원칙과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선비 정신을 청마는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홉째 청마는 한국 시단에서 보기 드문 존재입니다. 그는 한국시에 웅장한 남성미를 도입한 거인이라고 허만하 시인은 말합니다. 사실 시란 자체가 여성적이어서 감상적이고 조금은 유약합니다. 오늘날 청마처럼 남성답게 포효하는 시인이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기는 합니다.


허만하 시인은 책의 여기저기에서 청마 시의 특색에 대해서 말합니다. 또한 그 사이사이에 청마의 모습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겯들입니다. 청마는 1908년에 태어나서 1967년에 몰합니다. 통영 출신으로 중고등학교는 일본에 유학을 하고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하고 육이오때는 종군하고 나중에는 대구, 경주, 안의, 부산의 여러 학교의 교장을 거칩니다.


청마의 죽음은 저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고삼(高三)이 막 되려는 때였습니다. 청마가 버스에 치여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청마를 당시 경남여고 교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허만하 시인은 부산남여상 교장이었다고 하니 제가 잘못 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마는 2월 13일 광복동 선술집에서 한 잔 하시고 잿빛 두루마리를 입고 귀갓길에 좌천동 도로에서 길을 건너다가 버스에 치여 쓰러지고 운명합니다.


청마는 「단장 40」에서 ‘죽음도 삶의 한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청마와 기독교가 연관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물론 청마는 기독교 신자는 아닙니다. 청마는 어릴 때 부인인 권재순 여사와 같이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랐으나 나중에 그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신관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신의 존재는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는 신이란 오늘 내가 있는 이상의 어떤 은총을 베풀며, 베풀 수 있는 신이 아니라 시공과 거기에 따라 존재하는 만유를 있게 하는 의지 그것이다. 나의 신은 형상도 없는 팽배 모호한 존재다. 목적을 갖지 않는 허무의 의지다.’ 저는 데카르트가 신에 대해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시계가 저절로 가듯이 참견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허만하 시인의 이 책을 통해서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부인인 권재순 여사의 존재입니다. 청마는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그의 시가 교과서에도 실리고 또 이영도 여사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청마의 부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습니다. 권재순 여사는 유치원 선생님을 하는 등 청마가 밖에서 활동하는 동안 묵묵히 가정을 지켜온 분이었습니다. 1992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통영 출신인 청마는 대구, 경주, 안의 등을 전전하다가 말년에 부산에서 살았고 그 연수는 10년 가까이 됩니다. 청마의 부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였으며 부산을 노래한 일곱 편의 시가 있습니다. 「봄 바다」라는 작품이 그 중 하나입니다.

‘한창 꿀벌이 닝닝거리는 살구꽃이 피어 있는/여기 東大新洞 한 모퉁이 채마밭 옆댕길을/시방 나비가 앞서 가고 내가 따라가고/머리를 돌리면 멀리 거리 위에 지쳐 오른/아아 森森한 봄 바다 푸른 水平線’


마지막쯤에 가서 ‘草梁洞’이야기가 나옵니다. 청마가 젊었을 때 살던 주소가 초량동 456번지이었습니다. 부인 권재순 여사는 초량에서 세 번 이사했다고 기억합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해집니다. 얼마나 그리운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전차 타고 통학했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초량 시장을 돌아다니며 선생님의 눈을 피해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일본식 목조 건물의 교실 2층에서 보면 초량동을 넘어서 멀리 바다 수평선이 아득히 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학 들어가서 초반까지 한 20년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서 10년, 이제 진주서 35년을 살았습니다 이제 가끔 부산을 가면 왠지 낯선 도시의 빌딩의 숲에서 방향감각을 잃어 버린 제가 그리워하는 곳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범오동 매축지 퀴퀴한 냄새나는 골목입니다. 골목은 저를 훅 빨아들이고 추억은 가물가물 사라져 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해운대 동백섬입니다. 해운대의 빌딩들은 낯설게 저에게 다가오고 제가 눕고 싶은 곳은 동백섬 바위이지만 지금은 데크 다리 때문에 저의 그리운 과거로는 접근불가합니다. 과거의 꿈속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바위에 등을 대고 누우면 발 아래는 파도가 치근대며 철썩거리고 광막한 하늘에는 멀리 갈매기 한 마리 날아가고 저의 미래처럼 미완성의 그러나 활짝 트인 바다와 그 방향을 지시하는 수평선을 바라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들려주는 청마의 모습에 다시 한번 부산의 추억으로 돌아갑니다. 허만하 시인이 평생 존경했던 청마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고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그 열정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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