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 조금만 정보가 들어와도 뇌가 용량이 넘친다고
밀어낸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가 되면 송광사가 그립다 부처님
뵈러 가는 게 아니라 솔밭 사이로 꽉 차서 흐르는 처연(凄然)한
바람 속을 지나 나를 ‘포맷’하러 간다 의식만이 아니라 몸도,
학승(學僧)의 눈빛이 발밑의 돌길과 상수리나무 낙엽 사이에서
바스락거린다 여울물이 어둠침침한 내 속을 돌아가면 숲 사이로
트이는 하늘의 푸름, 사방 관절도 시리다 ‘알츠하이머 병에서의
치매’ 내가 남보고 자주 붙이는 진단명이다 여기서 한 발만 삐끗
더 나가면 난들 별 수 있을까
송광사에서 사온 보리순차를 마신다 차도 아니고 보리차도 아닌
보리밭의 보리를 눕히며 지나가는 서늘한 시간을 마신다 다시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