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참숯의 사랑
참나무로 숯을 만드는 가마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가마로부터 싯벌건 숯을 꺼내놓았습니다. 붉은 숯의 속은 오히려 맑기까지 했습니다. 손을 갖다가 대면 손이 뜨거워 뒤로 물리쳤습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이 먼저 가까이 가야 합니다.
봄비는 멀리서 뜨거운 불빛을 보면서 부나비가 불 속으로 뛰어들 듯이 자신이 바삐 그리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발걸음을 도중에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듯이 흥얼거리는 노래조차 나와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불빛 속에는 봄비가 그리도 차분하여 침잠하였던 기분을 한 순간에 바꾸어버릴 마력이 있었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자처럼 눈동자도 흐릿해지면서 가까이 갈수록 귓속에서는 환청이 들렸습니다. 눈에는 초점이 맞지 않는 풍경이 들어왔지만 그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피부가 끌리는 대로 마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불빛은 그런 그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아무런 기색도 없었습니다. 그러건 말건 그게 봄비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일방적인 짝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참숯에게 가까이 갈수록 봄비의 심장이 뛰었고 그 소리는 더 세찼습니다. 그게 봄비의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조한 기분으로 아무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걷던 봄비에게 의욕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언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게 무언지는 자신도 잘 몰랐습니다. 몰라도 아무런 장애가 될 게 없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달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봄비에게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봄비는 자신의 몸이 뜨거워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속으로 열병에 걸린 자처럼 헐떡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불무더기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빛과 열기가 그의 몸을 적시자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봄비가 왜 이렇게 여길 목숨 걸고 찾아왔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만족과 평안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제는 불빛과 불덩이가 거의 피부가 맞닿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거의 그의 심장은 뛰어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는 땀도 나지 않고 그의 피부가 까실해지면서 그가 가졌던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비는 왜 이런 데 자기가 왔는지 그제서야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걸 알아도 현재의 모습과 별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사실 구태어 알 것도 없었습니다. 가물가물 사라지는 의식 속에서도 불쪽으로 한발을 더 내밀었습니다. 몸은 이제는 증발이 되어 불 앞에서 소멸되고 없어져버렸습니다.
봄비는 이제 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는 오히려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도사처럼 이리저리 불 위를 거닐었습니다. 불은 그래도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고 불만 훨훨 타올랐습니다. 자신의 육체는 없어지고 영만 그 불 속에서 유리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애타게 찾아온 것이 이곳이었나 하고 비로소 의심하였습니다. 불은 계속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봄비는 계속 불구덩이로 몸을 던져서 자신을 소멸시키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진혼 나팔 소리가 울리고 불은 기세가 꺾이더니 점점 불 색깔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쪽 끝에서 까만 참나무의 형해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제는 불빛은 다 사라지고 뜨거운 열기만 죽어가는 사람처럼 숨을 쉬쉬 내뱉고 있었습니다. 까만 숯은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차디찬 시신이 되어 뒹굴 것입니다. 봄비는 그 시신 위에 자신을 몸을 계속 던질 것입니다. 자신이 걸어온 죽은 기억을 추모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