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좋은 인품, 좋은 인생이어야 훌륭한 수필이 된다’
정목일 선생은 수필가로 유명하다고 풍문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정목일 선생과 조영갑 선생이 지은 『행복한 수필 쓰기』를 다 읽고 나서 정목일 선생의 작품을 읽고 싶어 가장 최근의 책인 『수필과 산책』을 사서 보았습니다. 이 책은 의외로 1,2부는 수필론이고 3부에 수필 작품이 있었고 4부는 피천득 선생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정목일 선생의 『행복한 수필 쓰기』와 『수필과 산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막연히 가졌던 수필에 대한 안목을 다시 갖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정목일 선생은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수필론을 읽고 정목일 선생이 주장하는 바 중에서 저에게 가장 와닿는 것은 우선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수필은 자신의 체험과 느낌을 쓰면서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수필을 쓰게 되면 체험과 느낌을 단순히 나열하는 기록문으로 되기 쉽습니다. 의미 부여가 없는 것은 속된 말로 ‘앙꼬(팥소)없는 찐빵’인 셈입니다.
글쓰는 이가 자신이 감동 받은 체험과 느낌을 전개하는 가운데 남이 보지 못한 어떤 관점, 통찰, 성찰, 깨달음, 의미 부여를 발견하여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 부여를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그 방법 중 하나가 은유를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정목일 선생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운 것, 깊고 오묘한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내면에 있고, 모습을 감추고 있다. 잘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신비가 깃든다. 바깥만을 보는 데 머물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을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갖길 원한다.’
의미 부여 혹은 깨달음은 이런 보이지 않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체험과 느낌을 적어나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미나 통찰, 관점, 깨달음으로 가려면 보이지 않는 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은유가 그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수필을 쓰는 작법은 시는 쓰는 작법이 여러 가지 있듯이 단 한 가지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필과 산책』의 3부에 15편의 수필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작품인 「나팔꽃 일생」을 보면 ‘의미 부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팔꽃 일생」은 글자수로는 1200자 정도이고 200자 원고지로 6매입니다. A4용지의 2/3를 차지합니다. 생각보다 수필의 글의 분량이 적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독자의 가독력을 감안해서 이렇게 쓴 것이라고 짐작이 갑니다. 구성을 보면 처음에는 나팔꽃에 대한 정목일 선생의 개인적인 경험, 즉 나팔꽃과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 어머니와의 사연 등을 이야기 하다가 나팔꽃에 대한 정목일 선생만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나팔꽃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저만의 방식인 언술(진술과 은유)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 보면 이렇습니다. 총 31개 문장 중에 은유(직유 2개 포함)가 9개 문장으로 30%, 진술이 22개 문장으로 70%를 차지합니다. 이 수필의 의미 부여의 위치에 오면 갑자기 7개의 문장이 은유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건 무얼 말하나요.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려면 은유로 상상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그 외 「닭이 있는 풍경」도 「나팔꽃 일생」과 비슷한 구성을 보입니다.
하지만 「첨성대」는 신라인이 첨성대를 통해 우주를 만나고 영원을 만나려고 했다는 감상을 적은 수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 부여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누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라서 커다란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문장 구성을 보면 총 27개 문장 중 진술이 24개로서 거의 90%이고 은유가 단 2개뿐입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가 없었다는 말도 됩니다.
「겨울나무」는 겨울나무의 모습에서 사색, 비움, 인고, 침묵, 수도승, 묵언정진, 내공, 깨달음을 보면서 이른바 정목일 선생의 ‘의미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나팔꽃 일생」처럼 한 군데 집중하기보다는 스쳐지 나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전개한 느낌을 받습니다. 40개의 문장 가운데 은유 직유를 다 합치면 24개, 60%가 비유법을 사용한 문장이고 진술은 16개 문장으로 40%에 해당됩니다. 이를 보면 은유는 사색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필은 좋은 인품, 좋은 인생이어야 훌륭한 수필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책의 110페이지 정도되는 수필론에서 무려 열세 번이나 이런 유의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엄청 중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한편으로는 공감이 갑니다만 제 처지를 생각하면 난감합니다. 저를 인격자로 내세울 건덕지도 없고, 제 인생이 좋았다고 자부할 것도 없으니 수필을 써봤자 도로(徒勞)일 텐데 사서 고생할 것이 없다는 거죠. 시나 소설은 작가 인품하고 상관없이 사기꾼도 쓸 수 있다니 역시 그나마 써왔던 시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시와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수필은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이런 간격이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정목일 선생은 피천득 선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정목일 선생의 수필에 대한 사부로 모시고 있었지 않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그분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은 옛날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시간에 알았던 분이지만 이번에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50세 전후해서 절필하였다는 것, 수필집도 『인연』으로 한 권이고 작품수도 고작 78편에 달한다는 것, 「인연」 수필의 아사코 얘기는 허구라는 것, 따라서 수필이 아니라는 것, 장식품과 장서도 별로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삶을 살았다는 것, 어떤 문학단체나 모임에도 소속되거나 관여하지 않았고 문학잡지나 신문사에서 작품의 심사위원으로 청하였지만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지만 그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피천득 선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의 수필집을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의 은유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의 산문에 있어서 은유법을 탁월하게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유명한 「수필」과 「오월」은 거의 은유법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시적 산문을 쓰기를 바래왔지만 뜻만 있었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것을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서 찾게 되어 다시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 한 가지 정목일 선생의 수필론을 읽으면서 제 머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후감을 쓰는 방법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모든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쓰는 것은 아니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에 대해서는 독후감을 쓰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딱히 독후감 쓰는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저나름의 경험에 의해 쓰곤 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체험이고 체험을 하는 중에 어떤 느낌도 가지게 됩니다. 그런 것을 써가는 중에 남이 보지 않는 어떤 것을 제가 발견하여 의미 부여, 깨달음, 통찰, 관점을 쓴다면 그것은 정목일 선생이 제시하는 수필 작법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말하자만 독후감도 정목일 선생 식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제 생각입니다.
사족을 덧붙입니다. 정목일 선생의 수많은 책 중에서 단 두 권을 읽고 이런 말하기 뭣하긴 하지만 선생은 유난히 ‘~싶다’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사실 ‘~싶다’라는 말은 일본사람이 많이 쓰는 것을 제가 일본방송, 책을 보면서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버릇을 보았다는 겁니다.
수필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쓸 수 있고 그에 따라 누구나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문학계에서 경시당할 수도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목일 선생 말씀처럼 진정 수필을 훌륭하게 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어느 문학 못지 않게 매력이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