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하얀 침묵이다'
마르크 드 스메트라는 사람은 검색을 해보아도 어떠한 인물인지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1946년 생으로 참선 수행의 전문가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딱히 그 분야에만 몰두한 것 같지 않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 등 여러 가지 종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원작은 1986년 즉 저자가 40세에 출판되었습니다.
스메트가 일본의 묵조선(黙照禪)을 유럽에 소개한 데시마루 다이센(弟子丸泰仙)에게 참선을 배웠다고 하여 참선을 하면서 침묵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것이 저의 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스메트는 침묵이 나오는 에피소드(逸話)를 백화점식으로 소개하는 편이었습니다. 정작 침묵이라는 것의 정체를 좀 더 참선의 입장에서 천착하였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침묵을 왜 예찬해야 하는지 딱히 꼬집어 말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옥에 티라고 할까 정작 침묵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침묵이라는 뜻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이 있음이라고 합니다. 스메트는 침묵의 종류를 제도적 침묵, 집단적 침묵, 개인적 침묵으로 종류를 나눕니다. 우선 제 머리에 떠오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침묵의 예로는, 엘리베이터 속, 극장 혹은 콘서트 홀, 시험 칠 때, 야단 맞을 때, 자연 앞에서, 죽음 앞에서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침묵’ 중에서 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적 침묵이었습니다. 스메트는 상호작용적 침묵으로는 사회적 상관관계, 비상호적 침묵으로는 명상을 들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내면적 침묵과 외면적 침묵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전문적으로 산악을 타는 사람도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시간이 나면 산에 가고 싶어 산으로 갑니다. 집 근처에 있는 비봉산, 대원사가 있는 지리산 계곡, 피아골, 갈모봉, 송광사 뒷산, 선암사 정도를 갑니다. 산에 있는 순간 도시에서의 인공적 소리가 없어지고 자연의 침묵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침묵 앞에서 갑자기 저의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걸으면서 배경의 소리로는 바람소리, 새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발자국 소리만 제 귀에 들리고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목적도 없이 걷는 그 순간이 편안합니다.
스메트는 ‘눈은 하얀 침묵이다. 대자연의 얼어붙은 흰색 침묵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라고 말합니다. 눈의 자연의 소리까지도 말하지 못하게 잠잠하게 만듭니다.
내면적 침묵으로는 참선이 적절한 예 같은데 그것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본 바도 없고 그저 책 따위로 들은 풍월로 흉내내어 봅니다. 한국의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오로지 앉아서 단전호흡만을 한다고 하는 지관타좌(只管打坐)가 일단은 접근하기 쉬우므로 시도해 봅니다. 그것도 규칙적이지 못하고 생각나면 하는 정도입니다. 수식관(數息觀)을 따라하면서 오직 숨의 드나듦만 집중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세상일이 하늘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내면의 침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면의 침묵을 찾으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많은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고가 단순해야 합니다. 세상일로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면 내면에 소음만 생깁니다. 그 소음을 죽이고 침묵으로 다가가려고 어쩌면 지관타좌하고 수식관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스메트는 ‘진정한 종교는 기도의 참다운 뿌리인 침묵, 그 숨결에 가서 닿는 행위가 아닌가, 침묵이 없다면 기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유한한 것을 느끼면 신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어린애가 보채듯이 이것저것 두서없이 중얼거리고 요구하기보다는 침묵의 기도로 나아가 온몸의 언어로 기쁨과 슬픔, 고뇌와 절망, 그리고 신 앞에 나아가는 희망을 침묵 속에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침묵이어야 한다는 것이 몸으로 전해집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아마도 죽기 얼마 전 같은데―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술회하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가 교향곡 지휘를 마치고 곧바로 지휘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청중이 그 침묵을 참지 못하고 깨는 것을 심히 경계했습니다. 말하자면 제발 산통을 깨지 말아달라는 당부였습니다. 화려한 교향곡이든 못난 교향곡이든 언젠가 끝나는 것은 인간의 죽음과 같습니다. 영원한 침묵으로 가는 죽음의 순간에 어쩌면 장례식은 아바도가 교향곡을 끝내고 지휘봉을 들고 있는 순간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향곡을 음미하듯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침묵 속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스메트가 인용한 르 클레지오의 말이 인상에 남습니다. ‘죽음이 삶에 형태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삶을 매듭지어 완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묵은 언어와 의식의 궁극적 귀결이 된다. 우리가 말하거나 글로 쓰는 모든 것,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것, 진정으로 그것, 즉 침묵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