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시적 대상에 대한 관점과 지각의 유형과 언술의 종류
‘실재적 관점의 감각적 지각’이 내 시의 지향점이다
이렇다고 내세울 것도 없는 저의 시작(詩作)들입니다만 그래도 제가 시를 쓰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첫만남은 2000년이었고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렸으나 남아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시적 대상에 대한 관점과 지각의 유형과 언술의 종류입니다.
오규원은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중학교(저의 모교이기도 합니다)을 거쳐 동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나중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 몰하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폐가 좋지 않아 숨쉬기가 어려워 고생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시집은 열 권을 냈다고 하는데 제 서가에는 일곱 권이 있습니다. 2005년에 발간된 그의 마지막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에 제일 처음 나오는 시 「호수와 나무」는 이렇습니다. ‘잔물결을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한 사내가 물가에 앉아 있다/그 옆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가/어느새 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오규원의 시적 기법은 환유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그의 시가 잘 읽혀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끌리는 것이 있습니다.
시작(詩作)을 하려면 어떤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오규원은 말합니다. 하나는 관념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적 관점입니다. 관념적 관점은 구체적 현상은 보지 않고 개념적, 관념적으로 인식합니다. 오규원은 공원을 예로 듭니다. 공원의 벤치, 나무, 풀 등과 같은 구체적 사항을 제외하고 공원이라는 관념을 관점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실재적 관점은 공원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공원의 구체적 현상, 즉 벤치, 나무, 풀 등을 대상으로 보고 생각합니다.
관념적 관점에서는 지각적으로는 해석적 지각과 풍자적 지각이 있습니다. 해석적 지각이란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벤치, 나무, 풀 등의 사실적 존재가 관념화됩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바람의 혼’으로 관념적으로 해석됩니다. 그 예로 김춘수의 시 「꽃」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는 결국 꽃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이라는 관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적 지각처럼 대부분 진술의 언술을 사용합니만 그것이 기지·반어·냉소·조롱·해학의 수단이 되어 나타납니다. 이들도 결국 이 풍자를 통해 어떤 관념을 제시합니다. 오탁번의 시 「해피 버스 데이」를 봅니다.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영어와 한국어의 이중적 소리에 의한 다른 의미 생성이라는 말장난(pun)을 가지고 해학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실재적 관점으로 보는 대상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는 지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적 지각과 감각적 지각이 있습니다. 사실적 지각은 대상을 쉽게 말하면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재적 대상을 묘사가 아니라 진술(일이나 상황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함)하여 선택과 제시를 통해 사실적 국면이 직접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오규원은 말합니다. 그 대표적 예로 김광규의 시 「강남행(江南行)」를 보겠습니다.
‘최신판 서울시 교통 지도를 펼쳐놓고/미리 코스를 잡은 대로/한남대교를 건너서/강남대로 방향으로 직진하다가/아무래도 큰길이 나올 테니까/도산대로로 좌회전한 다음/선릉로로 우회전하여/학동로와 마주치는 사거리/모데르네 병원을 찾아갔다/두 시간 반 걸렸다/천안 가기보다 더 멀었다/돌아올 때 무작정/자동차 붐비는 길을 피해서 달렸더니/사십 분 만에 집에 왔다/가르칠 칠 수 없는 길을/또 하나 배웠구나’
김광규의 시는 거의 이런 식입니다. 별로 시적 장치도 없고 시적 긴장도 없습니다. 진술로 강남의 모데르네 병원을 가면서 얻은 어떤 삶의 지혜의 한 포인트를 말해줍니다. 이런 시는 조금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상투적인 깨달음에 그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시를 쓴다면 초보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광규와 같이 네임 밸류가 든든한 시인에게는 먹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정상 저는 어쩌면 김광규 스타일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래도 시의 본류는 감각적 지각이라고 믿고 방향을 틀었으나 워낙 재능이 없어 고생께나 하고 있습니다.
감각적 지각은 실재적 대상에 대한 지배적 인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대부분 심상적 묘사로서 그 대표적 기법이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길상호의 시 「그 노인이 지은 집」에서 그러한 이미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을 심고/세월에 알맞은 나이테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세우고/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이마에 땀을 닦으며 이제 그는 지붕으로 올라갔다/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 떠올렸다가/늙으면 찾아갈 실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을 젖을 것같아/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 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못 없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 지어진 집이었기에/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 나갔다/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 들었다/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이 다시 살아나/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관념이 보이지 않고 길상호의 집 지을 때의 대상에 대한 지배적 인상만이 보입니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감각적 지각을 몇 가지 골라 봅니다.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 들었다/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이 다시 살아나‘
그 다음에 제가 중요시하는 것은 오규원이 말하는 언술의 종류입니다. 언술의 종류에는 크게 나누어 묘사와 진술을 말하고 있습니다. 묘사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따위를 언어로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규원은 묘사에는 설명적 묘사, 암시적 묘사, 주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를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두 가지로 압축하여 저나름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각적 묘사와 심상적 묘사입니다. 시각적 묘사는 그야말로 눈으로 보이는 대로 쓰는 것을 말하고, 심상적 묘사(mind picture)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미지가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머릿속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입니다. 이것의 가장 좋은 예가 은유입니다. 은유는 상상의 발견이 결과물입니다.
진술은 일이나 상황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술은 주로 대상에 대하여 사실적 지각의 태도를 취할 때 사용합니다. 이러한 시는 시적 긴장을 일으키지 않고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용에 신중하여야 합니다.
길상호의 시 「그 노인이 지은 집」에서 묘사와 진술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이마에 땀을 닦으며 이제 그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 시구는 진술입니다. 반면에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는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시작(詩作)과 시의 감상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에 대한 인식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적 대상에 대한 관점과 지각의 유형과 언술의 종류‘가 저의 시작과 시에 대한 감상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