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7

7 은유는 몽상하는촛불이야

by 현목

은유는 몽상하는 촛불이야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가장 본질적 방법’



오랫동안 글쓰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저이지만 실제로 은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 것은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에는 시창작 동아리에 들어가서 시를 쓴다고 해도 그저 시적 분위기를 전달한 것이지 실제로 은유라는 수사법을 알고 작시를 한 것은 없었습니다. 2001년에 인터넷 시창작 교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시를 배운 셈이고 2004년에 『모호한 중심』이란 시집을 출간했을 당시에도 선생님들에게 배운 대로 흉내를 내었지 실제 이것은 은유이다라고 의식하면서 시를 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은유법은 원관념 A와 보조관념 B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원리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희랍어로 metaphore는 ‘넘어로’라는 의미의 meta와 ‘가져가다’라는 의미의 pherein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는 원관념 A를 ‘넘어서‘ 보조관념 B로 ’가져간다‘라는 말이 됩니다. 즉 메타포는 A와 B를 ’넘어 가져가서‘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창출합니다. 다시 말해 은유는 상상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사유와 이미지의 확장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은유를 많이 사용하는 시는 자연히 해석의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은유의 비의(秘意)를 알았을 때 읽는 이의 기쁨과 미적 쾌감은 남다를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라 일반 산문에도 은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글의 깊이와 품격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문학)는 언어적 상상력이 기본이라면 이것을 잘 나타내는 은유야말로 글쓰는 이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요긴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은유에 대해 저 나름으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된 책이 두 권이 있습니다. 하나는 엄경희 교수의 『은유』였고 다른 하나는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의 『내 삶의 글쓰기』였습니다. 은유라고 하면 대개 어느 책이나 수사법의 설명 중에서 그 예를 김동명 시의 「내 마음은」에 나오는 시구, ‘내 마음은 호수요’를 듭니다. 즉 원관념 A(내 마음)와 보조관념 B(호수)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서 A=B 형식으로 문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은 소위 ‘유사성을 축으로 한 은유’의 방법으로서 저도 예전부터 익히 알아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엄경희 교수의 『은유』―페이지 수도 96밖에 되지 않아서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했습니다만―를 읽으면서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새로운 지평이 저에게는 열렸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은유에는 ‘유사성을 축으로 한 은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성을 축으로 한 은유‘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앞의 김동명의 시의 구절을 갖고 ’차이성을 축으로 한 은유‘를 만든다면 이런 식이 됩니다. ’내 마음은 호수를 발로 차버렸다‘ 즉 원관념 A(내 마음)의 층위와 보조관념 B(호수)의 층위의 차이를 그래도 유지하면서 두 관념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제 손자에게 원관념 A(목소리)와 보조관념 B(개구리)를가지고 은유를 만들어보라고 하니까 ’떨리는 목소리는 개구리 입에서 산다‘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목소리‘라는 층위와 ’개구리‘라는 층위에서 유사성보다는 차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의 『내 삶의 글쓰기』를 보면 은유를 훈련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것도 한 페이지인가 잠시 예를 보였습니다. 정말 비중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은유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에서 예를 들어 A의 항목에는 ’이혼, 건강, 어린 시절, 진실, 과학, 욕구, 음악, 질투, 광기, 승리, 영감‘, 그리고 B의 항목에는 ’쇠스랑, 나뭇잎, 덴마크인, 연못, 풍선, 샴푸, 구두 밑창, 우편함, 향수, 공기, 키스‘가 있었습니다. A항목의 단어와 B항목의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음악은 키스이다’라는 식으로 만들지만 B항의 단어를 동사로 만들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가령 ‘음악이 키스한다’라는 식입니다.


이 책은 2011년에 읽었으나 처음에는 이런 식의 은유 만들기의 방법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은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작시를 할 때는 은유를 구사하려고 애를 썼지만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거나, 후천적으로 너무 늦은 나이에는 순발력을 요구하는 이런 기술을 감당하기에는 어렵구나 하면서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손자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런 은유 만들기를 가르치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저와 같은 꼴은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옛날에 읽었던 『내 삶의 글쓰기』의 「은유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A항목의 ‘이혼’과 B항목의 ‘쇠스랑’을 가지가 은유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혼에는 쇠스랑 소리가 난다.’


그리하여 2018년 1월 6일부터 제가 만든 방식의 은유 만들기 연습을 손주들에게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의 글쓰기』 책에서는 A항이 추상명사이고 B항이 구체적 사물 명사이지만 저는 A,B 둘 다 구체적 사물 명사를 사용했습니다. 2018년 1월 6일 당시의 과제를 다시 보니 이랬습니다. A항목은 ‘궁전, 넓은 도로, 골목길, 황금, 시장’이었고 B항목은 ‘탁 트인 하늘, 뜨거운 햇볕, 소낙비, 비바람, 담벽 틈새’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문장을 보면 대부분이 묘사(심상)의 문장이 아니라 진술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궁전에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본다. 궁전에 올라 뜨거운 햇볕을 쬐었다. 궁전이 소낙비에 흔들리고 있다.’ 이러던 것이 1.2년이 지나면서 저보다도 신선한 은유의 문장을 지어내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2년 2월 14일의 과제는 A항목은 ‘몰티즈, 신발, 상처, 마스크’이었고 B항목은 ‘문화, 통일성, 질서, 균형’이었습니다. 손자가 보내온 은유 만들기는 이랬습니다. ‘마스크는 문화의 수호자이다. 마스크가 통일성을 덮었더니 변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마스크는 어쩌다가 질서의 아버지가 되었다. 마스크가 균형을 째려봤더니 가면이 되었다.’


사실은 기대하지 않았던 저도 속으로 놀라고 있으며 이것이 어쩌면 이 책을 쓰려고 마음 먹은 동인(動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손자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2019년 4월부터 시작하여 매달 한 번씩 손주들에게 편지를 써오고 있습니다―너희들에게 은유를 가르치면서 내가 오히려 은유에 대해 배우게 되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촛불은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타서 주위를 밝힙니다. 그 밝힘은 어마어마한 조명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가까이만 밝혀 줍니다. 다른 하나는 촛불은 타면서 결국은 자신은 사라집니다. 은유도 원관념을 넘어서 보조관념을 통하여 의미와 이미지를 창출해내어 주위를 밝히나 그것은 세상을 경천동지할 것도 아니고 단지 읽는 이에게 즐거움과 미적 쾌감을 줍니다. 읽는 이의 마음을 밝혀 주었던 은유도 꿈을 꾸듯이 우리는 몽상에 젖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입니다. 은유는 몽상하는 촛불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몽상하는 은유의 보조관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원관념은 무엇일까요? 광대한 우주인지 아니면 우리의 자아를 영속시키는 천국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