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기
밑져야 본전이다
큰 손자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그 밑으로 중학교 1학년 두 명,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소위 ‘은유 만들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글쓰기 전문가도 아닙니다. 다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을 조금 많이 읽은 셈입니다.
글쓰기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것입니다. ‘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에서도 문장은 글 읽는 사람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간단명료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명료’한 문장은 논리적 글쓰기, 예를 들어 자기계발서나, 보고서, 혹은 자기 소개서 같은 경우에 해당됩니다. 문학적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상상에 근거하므로 간단명료한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합니다. 그래야만 다의성을 띠게 되고 읽는 사람마다 그 문장의 느낌이 다릅니다.
그러한 문장을 만드는 데는 진술보다는 심상적 묘사 즉 은유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인 취향으로 문학적 글쓰기에서 은유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생각했기에 손주들에게 어릴 때부터 그런 훈련을 시키고 싶다는 욕심에서 이러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제일 큰 놈이 초등학교 5학년이였고 그 밑으로 더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은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원관념’이니 ‘보조관념’이니 하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2016년 1월 6월 토요일 드디어 처음으로 문제를 내었습니다. A항에는 ‘궁전, 넓은 도로, 골목길, 황금, 시장’이 있고 B항에는 ‘탁 트인 하늘, 뜨거운 햇빛, 소낙비, 비바람, 담벽 틈새’가 있습니다. A항의 단어와 B항의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은유의 문장을 어떻게 만들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단어를 가지고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발상으로 문장을 만들어 봐라.” 애들을 데리고 두 단어 사이의 유사성이니 차이성을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단지 실제 문장을 가지고 지적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A항과 B항의 단어를 가지고 그들이 만든 문장들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궁전에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본다.
넓은 도로가 뜨거운 햇볕에 뜨거워지고 있다.
골목길에 비바람 때문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황금이 뜨거운 햇볕을 반사시킨다.
시장에 소낙비가 와서 사람들이 피한다.
이런 문장들은 진술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이 되는 글을 쓰지 말고 말이 안 되는 글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알아들었는지 평범한 진술 가운데서 가끔 은유가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궁전이 탁 트인 하늘 아래 심심하게 앉아 있다.
넓은 도로가 소낙비에 홀랑 젖어서 슬퍼한다.
골목길이 뜨거운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절교를 했다.
황금이 뜨거운 햇볕에 화상을 입었다.
시장이 뜨거운 햇볕 때문에 장사가 안 되어서 싫어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명확히 어떤 개념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실제 문장을 만들어 보고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하는 느낌에 따라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은유 만들기 과제를 내어주면 애들은 “할아버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쓰면 되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라고 제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기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을 했으니까 실패해 봐도 밑져야 본전입니다. 둘째는 역발상을 일으키고 굳어진 사고의 틀을 깹니다. 셋째는 상상력이 풍부한 글로 이어집니다.
이제 2022년 3월이 되어 거의 4년이 지나가다가 보니 제가 정말 놀라는 것은 아이들의 머리는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유연성이 저 같은 늙은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런 문장을 만들어냈지 하는 감탄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시도가 과연 저 아이들이 장래에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확인할 도리도 없을 것같습니다. 다만 이것도 어쩌면 어릴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 교육을 시키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