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상렬 식으로 글쓰기
종합명제 연습하기
김상환 교수는 『왜 칸트인가』에서 칸트는 인간의 마음은 감각과 상상력과 지성 그리고 이성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감각은 물자체에 의해 촉발된 자극을 직관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전제하에 성립됩니다. 지성은 감성이 받아들인 잡다한 내용을 선험적으로 우리의 정신에 주어진 형식, 즉 12가지의 범주(양, 질, 관계, 양태의 범주 아래 3개씩 더 있음)에 의해 인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상상력은 직관을 통해 들어온 감성의 내용을 특정한 형식, 즉 12가지 범주를 가지고 인식하게 될 때 감성과 지성이 잘 결합할 수 있도록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이성은 지성이 인식한 것을 체계화하여 추론하는 능력입니다. 이성은 수렴되는 세 가지의 이념이 영혼, 우주, 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의식을 가진 인간이 어떤 판단과 인식을 얻기 위해 사유를 할 때 흔히 명제를 말합니다. 이때 명제(命題/proposition)란 논리학에서 진위(眞僞)를 물어보는 뜻이 담긴 것을 의미합니다. 분석명제(analytic proposition)는 분석 판단을 내용으로 하는 명제이고, 종합명제(synthetic proposition)는 칸트 철학에서, 종합 판단을 명제로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은유는 몽상하는 촛불이야’ 하면서 웬 생뚱맞은 명제 운운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종합명제’가 은유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칸트인가』에서 김상환 교수의 말을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칸트 이전까지는 명제를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로 나누었다. 분석명제에서는 술어에 해당하는 속성이 주어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 예를 들어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진다’ 또는 ‘삼각형은 넓이를 지닌다’ 같은 명제를 보자. 여기서 술어인 ‘세 변’과 ‘넓이’는 모두 주어인 삼각형의 정의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런 명제는 결코 틀릴 수 없다. 언제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 새로운 내용의 확장은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문장들이 대부분 칸트가 말한 ‘분석명제’들입니다. 주어의 속성을 가진 술어로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야말로 술술 이해합니다. 반면에 종합명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와 달리 종합명제에서는 주어에 없는 속성이 술어에 의해 덧붙여진다. ‘이 삼각형은 금 으로 만들어져 있다’ ‘저 삼각형은 초록이다’ 같은 명제를 보자. 여기서는 술어에 있는 ‘금’이나 ‘초록’은 삼각형의 정의에 없는 요소다. 삼각형 자체와 무관한 경험적 사실이 계사(‘~이다’)에 의해 주어에 결합된다. 이런 명제는 분석명제와 달리 내용의 확장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런 궁극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종합명제는 보편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다만 개연적이며, 그래서 언제나 오류 가능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
종합명제에서는 주어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술어로 덧붙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듣는 순간 금방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잠시 왜 그런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가 바로 메타포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분석명제는 대부분 진술일 것입니다. 틀릴 수가 없습니다. 보편적이고 필연적입니다. 반면에 종합명제는 대부분 차이성을 축으로 한 은유입니다. 보편적이거나 필연적이 지 않습니다.
마침 엄경희 교수는 『은유』에서 제가 말한 ‘종합명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엄경희 교수는 물론 ’주어의 속성‘이라는 말 대신에 ’선택 제약‘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강은교 시인의 「자전(自轉) I이라는 시를 예로 듭니다.
그 문장들은 주로 ‘선택 제약’을 벗어난 문장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즉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 항목 가운데 함께 쓰일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함께 묶어놓으면 규범문법 구조 로부터 일탈하게 된다. 이 같은 문장을 찾아보자.
•빈 뜰이 넘어진다
•사람은 혼자 펄럭인다.
•햇빛이 도시를 끌고간다.
•여자들은 떨어져 쌓인다.
•집이 흐느낀다.
•一平生이 낙과(落果)처럼 흔들린다.
이 문장들은 주어와 술어가 선택 제약을 벗어난 채 연결되어 있다. 주어에 맞지 않는 동사가 한 문장 안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 제약을 벗어난 주어와 술어는 서로 층위가 어긋난 경우로 대부분 주어를 다른 층위로 옮겨놓는 은유의 형태가 된다.
신기하게도 위의 문장들은 김상환 교수가 앞에서 말한 종합명제의 문장들과 구조가 같습니다. 주어의 속성이 아닌, 엄경희 교수 식으로 말한다면 주어의 ‘선택 제약’을 벗어난 술어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개그맨 지상렬이라고 있습니다. 그가 구사하는 언사가 독특하여 주위 사람들이 그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칭송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이런 종합명제 식입니다. 예를 들어보보면 이렇습니다. ‘내 고막이 달마시안이 됐잖아. 인생에 깜박이가 들어오네.’
우리는 글을 쓰려고―물론 모든 문장을 이렇게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주어를 잡으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한 ‘분석명제’ 식으로 나아갑니다. 즉 주어의 속성에 있는 술어로 문장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종합명제’를 지향하거나 지상렬 식의 언사를 구사하려면, 주어가 주어졌으면 주어의 속성이 아닌, 즉 차이성을 축으로 한 술어를 갖다붙여야 합니다. 문제는 이때 지상렬처럼 순발력 좋게 완성하면 좋은데 저처럼 둔하면 시간을 투자해서 머리를 짜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제 손주들에게 ‘종합명제 연습하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시도를 초등학교 때 했으면 성공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최근에 하니까 연습하는 데 동력을 잃어버려 소기의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연습문제의 보기로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 나오는 은유 문장을 선택하여 주어만 주고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 보라고 해보았습니다. 본보기로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1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 (언제나 나를 응원해준다.)
2 생사는 자전거 체인 위에서 ~~. (열심히 균형을 잡으려한다.)
3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위에서 몸은 ~~. (바람을 흡입한다.)
4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 (행복해 하며 열심히 달린다.)
5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항상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6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 (서로 인사한다.)
7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러서 가는 사람은 ~~. (길을 잡아먹는 쾌감을 느낀다.)
8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길과 감정을 공유한다.)
9 그래서 자전거는 ~~. (나의 절친이다.)
10 자전거는 힘을 집중시켜서 ~~. (길에게 마사지를 해준다.)
종합 명제의 구사, 즉 지상렬 식 글쓰기는 매력적입니다. 지상렬은 주어가 주어지면 주어의 속성이 아닌 술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니까 듣는 사람은 그 내용이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들립니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한다면 주위의 친구들이 모두 지상렬의 말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좋아하듯이 잘만 하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만 지상렬은 어느 의미에서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역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