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면 쓰기’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세밀묘사가 있다
이 ‘세 장면 쓰기’는 공식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거기에는 사유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아마도 10년도 전인 것 같습니다-제 노트북에 저장해 놓았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고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장은수라는 분이 말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 노트북에 저장된 것은 이랬습니다.
1) 그는 동전을 넣는다--->5백원 짜리 은화가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그는 반짝이는 강물을 갑자기 생각했다. 스릿(slit)으로 된 구멍의 안쪽이 무한히 넓은 어둠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동전을 살며시 집어넣었다.
2) 스윗치를 누른다---> 불랙과 밀크와 여러 가지 메뉴가 갑자기 어른거리는 복권 돌리기판처럼 윙윙 돌아가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느 것을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망설임의 곤혹스러움이 흘낏 지나갔다. 사는 것은 이렇게 형편없는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3)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컵을 뽑아든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3백원 짜리 커피도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이 찰 때까지. 천천히 무슨 판결문을 읽듯 뽑아들고 코앞을 지나가는 향기를 읽었다. 싸구려 커피도 어떤 고급 커피처럼 품위를 느낀다. 반환 레버를 당기면 잔돈 떨어지는 소리가 커피 값에 비해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4) 커피를 마신다---> 입속으로 퍼져가는 커피향과 푸름의 배합이 뇌수의 어디를 흔들어 놓는다.
말하자면 ‘그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다‘는 단순한 문장을 세 가지 혹은 네 가지로 세분하여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자 제 머릿속에 어떤 영감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해보자.”
그러고는 당장에 손주들에게 과제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명을 충분히 해주었지만 아이들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따라서 ’세 장면‘을 쓰는 데 제가 의도했던 대로는 잘 따라오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세 장면‘은 ’네 장면‘ 혹은 ’다섯 장면‘, 그 이상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많이는 해보지 않았지만 연습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진료실 문을 열다‘라는 단순한 문장을 세 장면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묘사해 보는 것입니다.
1 진료실 문앞에서 그는 반짝이는 비닐 속에 ‘진료중에는 휴대폰을 진동으로’라는 글귀가 적힌 문구 옆에는 입이 째지게 미소짓는 아이콘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웃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은빛 손잡이가 가로로 놓여서 가로막았다 자신이 숨겨놓은 비밀을 알려면 자신을 비틀어야만 한다는 것 같았다.
2 천천히 지긋이 돌리면서 손잡이로부터 전해져 오는 쇠붙이의 차가움을 느끼면서 문을 지긋이 열었다. 백미터 달리기의 출발선상에서 긴장하여 엉덩이를 치켜든 선수들처럼 방안의 공기는 나를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밤새 그런 자세로 땀을 흘리고 있었는지 퀴퀴한 땀냄새가 코 끝을 휙 지나갔다.
3 문은 천천히 닫고는 방안을 공기가 빠져나간 허공을 헤치면서 나갔다. 책상 위의 침묵이 나를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어깨에 멘 가방을 책 선반에 있는 공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시공간에 내가 들어서니 침묵이 깨졌다. 컴퓨터에 스위치를 넣으니 화면에 파란색 화면이 떠오르고 너도 나도 바빠졌다.
이런 연습을 하다보니 ‘세 장면 쓰기’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점으로는 하나는 묘사가 디테일해 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좀 더 극대화되면 어쩌면 의식의 흐름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원고의 용량이 모자랄 때 이런 수법을 동원하면 원고량을 수월하게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너무 의존하면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테일한 묘사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적으로 사건의 전개가 나아기지 않아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에는 이런 방식의 글쓰기도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