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17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5)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 (10)

경험과 관점


오랜만에 무주에서 순유, 순규를 만나니 너희들이 성장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순유는 이제 중학생이 된다고 교복까지 맞췄다고 했지. 순규는 웬일인지 말레지아를 다녀온 후로는 부쩍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너희들을 들볶아서 글쓰기를 시켰던 보람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 마음 속에 뿌듯함을 준단다. 순유는 어찌 되었던 햇수로 5년이 되었어. 이제는 정말 은유를 만드는 능력은 나보다 훨씬 낫단다. 순규도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매번 나아지고 있어. 순유의 장점은 치밀하게 논리를 세우면서 글을 쓰는 반면에 순규의 장점은 그런 치밀함보다는 순발력에 있는 것 같애. 순규는 잡다한 논리보다는 순간적인 느낌을 받아 그대로 써내려가는 것이 뛰어나다는 걸 느낀다.


학교에서의 숙제, 학원에서 주는 과제 등으로 인해 할아버지가 내주는 문제 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노력해 주면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고 나는 기대한다.


순유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언젠가는 백일장이라는 걸 만나게 될 거야. 말하자면 글짓기 대회이지. 거기서 무슨 글 제목을 주고 시를 짓거나 산문(혹은 수필)을 쓰게 할 거다. 우선 수필을 쓰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할아버지가 생각하기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애.


첫 번째는 요즘 순유순규가 글짓기를 하듯이 너희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없을 것 같은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서 쓰는 것이다. 이건 나도 너희들에게 과제를 내주기 전에는 예상 못했던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순유순규 덕분에 나도 배운 셈이다.


두 번째는 소위 전통적으로 쓰는 수필이다. 물론 수필에는 논리적인 수필이 있다. 이것은 순유가 나중에 대학교 갈 때 시험 보는 논술에 해당되는 것인데 이글은 대부분 진술(혹은 설명)을 갖고 논리적 전개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단논법으로 A=B. B=C, 따라서 A=C이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나도 좀더 공부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문학적 수필, 혹은 서정적 수필을 이야기하고 싶다.


서정적 수필은 구조상 제일 먼저 제시되는 것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순유가 한식에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산소에 갔다고 하자, 그때 순유가 어떤 느낌을 받았다고 하자. 그것은 누구도 모르고 순유 자신만이 경험한 것이다. 그런 경험한 사실을 도입부에 쓰는 것이다. 그 쓰는 방법은 이제껏 배운 것, 즉 그림 보듯이 눈으로 보듯이, 귀로 듣듯이, 손으로 만지듯이 쓰고 간혹 필요하면 은유도 같이 섞어 놓는다.


그 다음에 순유가 그 경험한 것에서 느낀 것을 도출하여 결론을 짓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식에 조상의 무덤에 가보니 한편으로는 풀이고 나무고 다 죽어서 누렇게 되어 있는데 주위에서는 새로운 생명인 풀들이 땅에서 솟아오는 것을 본 느낌, 혹은 그것을 통해서 순유 나름으로 깨달은 것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한편의 수필이 완성된다.


물론 그런 구조는 총론에 해당하고 각론에 속하는 것은 좀전에도 말했듯이 그림을 보듯이 그리고, 은유를 구사하는 등 살을 잘 붙여야 한다.


그 외에 글을 쓸 때 생각나는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해 볼 게.

첫째, 제목 붙이기인데 백일장 같으면 미리 제목이 정해져 있으니 별 문제이고, 순유순규가 수필을 쓸 때는 순유순규가 제목을 붙여야 한다. 이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이것만 설명하려고 해도 한참을 써야 한단다. 우선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자기가 쓴 글의 가장 중심 내용을 한 두 단어를 가지고 쓰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쓴 글을 상상할 수 있는 제목을 에둘러서 쓰는 것이다. 이것은 나름 기교가 필요하다.


둘째, 첫문장을 심혈을 기울여 써야한다. 이건 내 말이 아니고 글쓰기 책을 쓰는 저자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읽는 사람이 첫문장을 읽으면서 무언가 궁금증을 일으킨다든지,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면 “응,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는 자꾸 읽어나가는데 첫문장이 진부하면 “에이 뭔가 재미없어 보이네” 하고는 조금만 더 지루하면 안 읽을 태세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첫문장은 소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항상 문장을 쓰면서 이 문장 속에 상상이 들어가 있나를 체크해 봐라. 사실은 순유순규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실천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해야겠네. 내가 이런 걸 강조하는 건 너희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버릇을 들여놓으면 그것이 평생 가기 때문이다. 마치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켜는 것을 배우듯이.


넷째, 결말을 잘 내려야 한다. 지난번 글쓰기 과제에서도 말했지만 ‘열린 결말’을 지어야 한다. 어릴 때는 대개 자기가 이러이러해야겠다고 결심했다든지, 앞으로 착하게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든지, 교훈적으로 자신이 끝내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자신이 결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 자신이 결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영화를 예를 들면 이런 저런 사건이 일어나고 마지막이 되면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평화로운 장면을 보내주면서 영화를 끝내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닫힌 결말’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전개되고 마지막쯤 가면 영화 감독이 어떤 장면에서 갑자기 끝을 내버린다. 그러면 영화 보던 사람이 “응, 이게 뭐지? 아, 이렇게 된다는 말이네‘ 하고 자신이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열린 결말‘이다. 글쓰기도 이런 방법을 원용해야 한다.


다섯째, 고쳐 쓰기이다. 이것도 첫문장에 신경쓰라고 한 것 같이 대단히 중요하다. 실은 나도 잘 못하고 있어. 기껏 쓴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시 쓰라고 하면 지겹게 되지. 그러나 글을 쓰고 나서 한 3일쯤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자기가 글을 쓰면서 발견하지 못한 점을 많이 찾게 된단다.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에네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고쳐썼다고 하지.


고쳐쓰기도 신경 써야 할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문장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를 체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주어에 맞는 동사가 쓰여 있는지, 이 동사를 썼는데 주어가 제대로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글쓰기에서 내가 늘 지적했듯이 접속사를 남발하지는 않는지 보아야 한다. 이건 사실 나중에 얘기하는 게 맞지만 기왕에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 문장도 같은 길이로 다 쓰면 지루하다고 한다. 짧은 문장도 쓰고 복문을 써서 길게도 써서 그런 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건 좀 더 글을 쓰는 능력이 갖춰져야 할 때 해야 할 것이지만 생각나서 그저 언급한 것뿐이다. 아참, 잊을 뻔 했네,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면 안 된다. 두 번 이상은 피해야 해.


오늘은 두서 없이 수필에 대해서 썼다. 다음 달에는 시에 대해서 말해 볼 게.

그럼 바이.



2020년 2월 1일 토요일

진주, 학이재(學而齋)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