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보내는 편지(4)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순유 순규 잘 있었니? 이제 여름 방학도 끝나고 개학이 되었겠다, 아마도. 이번 여름은 서윤이와 서우가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되어서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스케쥴을 짜다 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간 느낌이야. 너희도 사촌이 와서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원래는 할아버지의 국민학교 시절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순서를 바꿨어. 너무 같은 얘기를 하면 지루할지도 모르고, 그것보다는 우리 순유 순규가 이번에 은유 연습과 짧은 글짓기를 잘 해서 할아버지 기분이 고양되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어.
할아버지가 특별히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야.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통틀어서 백일장에 한 번 나가 본 적도 없단다. 단지 글쓰기에 대해 흥미 내지는 관심은 나도 모르게 쭉 갖고 있은 셈이지. 결정적인 것은 대학교 때였어. 집은 부산이었고 서울에서 하숙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게 되었지. 게다가 할아버지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떠들썩하게 노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글쓰기, 특히 시에 대해 관심도 가지고 습작을 하게 되었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글쓰기는 왜 할까. 여기서 내가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생각이지 그게 딱히 정답은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길 바란다.
첫째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제일 강점이 있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단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제나 순탄한 일만이 있는 건 아니란다. 너희가 이제 커서 대학교엘 가서 여학생과 사귀다가 실연을 하여 좌절할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집안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고, 어려운 병에 걸려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이 혼돈할 때 자신의 생각을 추스르는 데는 글쓰기 좋지 않나 생각해. 나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 몰라도 어려울 때가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면 왠지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도 평정해지기도 했어.
둘째는 글쓰기를 좋아하려면 언어(말과 글)에 대해서 어떤 친화력을 가져야 해. 그건 다른 예술을 보아도 마찬가지야. 예컨대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는 피아노 소리나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화가는 색깔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한 거지. 사실 그래서 수필이나 시, 혹은 소설을 보고 그 표현에 대해 그 미묘한 느낌을 보고 좋아하면 그건 글에 대해 흥미와 관심이 있다는 거지. 할아버지는 요즘 송재학이라는 시인을 다시 복습하고 있어. 옛날 2003년부터 3년간 그의 시집 여섯 권을 읽고 컴퓨터에 옮겨서 분석을 했단다. 그런데 결론은 너무 어려워 포기를 했지. 그러다가 요즘 순유, 순규 서윤이 은유 연습하는 걸 보고 다시 복습하게 됐어.
예를 한 번 들어 볼까. 그의 시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
‘나뭇잎을 닮은 물소리가 차츰 눈부시다’(「일출」 중에서) 이 글은 순유, 순규가 은유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니. 바닷물이 나뭇잎을 닮아서 출렁거리는데 해가 돋으니 눈부신 거다. 여기서 바닷물이 눈부시다고 했으면 재미없었을 거야. (바다) 물소리가 눈부시다는 게 결정적이지. 할아버지는 이런 글을 읽으면 네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듯이 희열을 느끼는 거다.
이왕에 말한 김에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할 게. 이건 지금은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다시 상기해 봐라. 사람은 동물과 다른 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어다. 순유, 순규, 서윤이, 서우를 외부의 사물(예컨대, 아버지, 어머니, 봉봉이, 봉고,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 친구, 산, 나무, 강, 별, 등등)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예를 들어 외부 사물인 산을 눈으로 보면 그 산에 대한 정보가 우리 뇌 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산‘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산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외부 사물을 이해하는 것은 전부 이런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사물을 산이라는 대충 지식으로 만들어 낸 언어인 ’산‘이 정말로 ’산‘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시각적 지식이 진정한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진리는 글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말이 나왔단다. 그런 의미에서도 시는 글자가 아니라 이미지(image)로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나타내려고 한다. 너무 어렵지. 그런 게 있다고만 생각해 둬라.
셋째는 글을 씀으로써 순유 순규는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세상을 잘 알고 있다는 거는 아니다. 다만 글을 쓰려면 다른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생각도 나름 많이 해야 하니까 우리가 태어나서 언젠가는 저 천국으로 가는 동안 부딪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너희들 순유, 순규, 서윤이, 서우에게 글쓰기를 너무 강요한 것 같애서 어떤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어쩌면 싫어할지도 모르고 사실 재능도 없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나의 욕심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너희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는 것은 혹시 너희 중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있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무리하게 너희를 구속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관심도, 흥미도, 재능도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면 굳이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단다. 다만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할아버지가 주는 과제를 충실히 해주었으면 하고 부탁하는 거다.
너희 아버지, 태우, 태근이는 왜 이런 공부를 안 시켰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너희 태우, 태근이가 어릴 때는 나는 병원을 개업하고 돈을 버느라고 너희 아버지들에게 이런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고 글쓰기에 대한 지금과 같은 안목도 없었다. 게다가 너희 아버지들은 또 글쓰기에 대해 별로 좋아 하지도 않아서 별로 권하지도 않았지.
오늘은 이만 쓸 게.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순유, 순규는 스마트폰에 빠지면 안 된다. 순유는 중학교 들어가면 여학생과 연애하면 안 되고.^^ 알겠지. 내 말이 아니라 어떤 진학 상담사가 한 말이야.
이만 총총.
2019년 8월 25일 일요일 진주 學而齋 寓居에서
할아버지가.
*學而齋(학이재): 學--배울 학, 而:말 이을 이, 齋: 집 재. 학이재는 할아버지 서재 이름이야. 내가 지은 거지. 어디서 인용했느냐 하면 공자의 논어에서 처음 나오는 말에서지.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해석하면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된다. 처음 나오는 ‘학이’를 따서 내가 서재 이름을 학이재라고 지은 거다. 멋있지^^
우거라는 말은 자기 주거(일정하게 머물러 사는 집)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해.